식자의 고민
삼백 열두 번째 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
가끔 장을 보러 가거나 아내의 심부름으로 마트를 갈 때가 있습니다. 먹거리용 채소를 사가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늘어놓은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신선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몇 번을 봐도 저의 눈엔 그놈이 그놈 같습니다. 이것도 자꾸 하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도, 갈 때마다 같은 고민은 무한 반복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채소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하나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저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의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마트의 야채 코너 가판대 앞에 선 무지한 남자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마음은 이미 식자이기를 원하고 있으나, 시간을 끈다고 해서 없던 안목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 짧은, 식자의 고민 끝에 얻은 건 '에라, 모르겠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좋은지 몰라 가장 좋아 보이는 한 놈을 냉큼 집어 오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투표를 하고 끝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아마도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색하곤 합니다. 가령 사람들의 무리에서 완벽하게 외톨이가 되려면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될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람들도 가급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정치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누가 있건 말건 간에 정치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은 나이 먹고 말까지 많은 남자들 뿐입니다.
그런데 우린 왜 이렇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싫어하는 걸까요? 그건 정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싫어서 혹은 넌덜머리가 나서 관심이 없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선 절대 침묵하지 않습니다. 정당의 정책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고, 그들의 평소 행실이 낙제점에 가깝다고 해도 우린 그들이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다 못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감히, 잠시만 저를 '식자'로 둔갑시키려 합니다. 적어도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이 식자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분명 후보자들은 채소가 아닌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저는 마트 가판대 앞에 선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가장 싱싱한 걸 골라 가야 하는데, 어떤 것이 더 싱싱한 놈인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덜 오염되어 보이는 걸 기껏 골라 갔더니, 아내는 제게 '이런 것밖에 없더냐'라고 합니다. 제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고작 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어떤 놈이 더 좋은지 모르겠던데 어떡해. 아무리 뜯어봐도 그놈이 그놈 같거든. "
역설적이게도 식자이고 싶어 했던 저는 금세 무식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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