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l 11. 2023

아무도 없는

다섯 번째 글: 조심 그리고 또 조심

모레 중요한 공개수업이 있어 오늘 초과근무를 하고 저녁 9시쯤에 역으로 왔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거짓말처럼 역내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좋아할 일인데, 태생적으로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사람의 냄새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 적막감이 더없이 싫다.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 나와 얼마나 친분이 있느냐에 따라 나를 평가하는 잣대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고작 내가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쓰는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쁜 생각을 버리고 다시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난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내 속 어딘가에게서 울림 하나가 느껴진다. 그때 그렇게 내딛고 만 발자국이 과연 앞으로 나온 게 맞느냐고 말이다.

어쨌건 간에 내 나름대로는 충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열심히 사는 게 잘못은 아닐 테다. 물론 지금 내가 이렇게 단언할 만큼 열심히 살았는지는 내가 판단할 게 못 된다. 내가 보는 내 삶의 본질보다는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관점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는 외골수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마음을 열어 보이는 일도 없다. 비록 입에도 못 대는 술 한 잔조차 기울일 사람도 없다. 오래전에 그런 사람들을 내 시야에서 치워버린 탓이었다. 쓸쓸하다 혹은 외롭다는 단어가 생각나는 건 이 때문일까?

고독과 외로움은 분명 다른 것이라 했다. 고독은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경지를 말하고, 외로움은 그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자아정체성에 위협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고독인가, 외로움인가?

단언컨대 난 고독을 즐기노라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게 바로 외롭다는 증거라고 진단을 내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때에 마음의 중심을 잡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람이 골로 갈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단거리 선수가 라인을 밟지 않고 열심히 자기 레인을 달려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라인이 죄다 지워져 버린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가? 이전에 왔던 경험 하나만을 믿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한창 헤치고 나가려는데 그게 막다른 골목이었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야만 하는 심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데도, 심지어 이 방향의 플랫폼에서 열차에 오르면 집에 도착할 수 있고 늘 그렇게 해왔는데도, 자꾸만 이 길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저쪽이라며 단정을 지을 수도 없다. 맞다.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당장 답을 구하기보단 답을 기다리는 게 현명한 건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드디어 기차가 또 다른 역내로 접어든다. 방송을 들어보니 제대로 오긴 한 것 같다. 열차 내에 울리는 역무원의 목소리가 정확히 내가 내릴 곳이 어디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발을 내디뎠을 때 낯선 곳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쓸데없이 이렇게 흔들릴 때 무턱대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 상태로 나를 주시하고 내 마음이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맡겨도 될지 결정해야 한다. 이젠 어쩌면 한 번 발을 내딛으면 되돌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다가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도 자칫하면 돌아 나올 힘조차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자아가 흔들릴 때 골로 가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