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l 11. 2023
오늘처럼 글이 안 써지면 나를 살피게 됩니다.
글이 안 써지면 펜에 잉크를 채우거나 텅 빈 머릿속을 살피는 게 옳을 텐데 말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이 안 써지는 건 이유가 간명해서입니다.
마음이 혼탁해지면 금세 닦아둔 창에 성에가 끼거나 먼지가 앉은 것처럼 막힙니다.
막힌 건 시야인데 손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눈과 손은 연관이 이토록 친밀해서 글자의 생김새도 비슷한가 봅니다.
나로 향하는 시야가 확보되어야 내 밖으로 나가는 글길이 열립니다.
그대는 그렇지 않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가끔은 눈으로 내 몸을 내려다보면 눈 끝에 팔이 연결되어 있는 듯 착각이 듭니다.
한눈팔다는 말은 한 눈으로부터 팔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해 주고는 바로 농이 었다고 고쳐 말했는데 여전히 그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팔은 손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팔 끝에 손이 있으니 그들의 작당이 당연할 것이라고 섣불리 상상하지만 그들은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처럼 성격이 판이합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서로 잘 맞는다는 말이 얼마나 이치에 안 맞는 말인지 알았으니 말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영원한 척 수작을 부렸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글이 안 써질 때에는 이토록 많은 말들을 게워냅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내가 바라보는 하늘보다 등진 하늘이 더 넓듯이 말입니다.
안 써지는 심정을 쓸 때에는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단어들을 분리수거하지 못합니다.
비가 오니까 글이 안 써진다고 우겨봅니다.
감성이 말랑해져서 딴짓을 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비가 오면 마음이 온통 흙탕물로 첨벙거립니다.
눌어붙은 아픈 기억들이 빗물에 불어서 내 글길로 범람해 막아버리고 헝클어뜨립니다.
비는 늘 원망의 대상입니다.
비가 그랬어!
저기 담장으로 날아오르듯 뛰어가는 길고양이에게 고자질해도 시원치 않은 속입니다.
늘 사랑이 부족한 탓에 글도 말라버리는 것인 줄 잘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오늘은 그대라도 불러내서 각자 안주머니에 품고 온 우정을 숯불에 구우며 오해를 잔에 채워 원샷하고 정신을 저 멀리 은하수로 까마득하게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바쁘실 텐데
나
오
실
래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