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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pr 30. 2024

지하철에서......

삼백 스물다섯 번째 글: 늦은 시간입니다.

다소 늦은 시간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직은 그리 늦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11시 넘어 집에 도착하는 걸 감안하면 분명 이르진 않습니다. 대구 수성구 시지에 사는 30년 지기 친구를 만나고 들어가는 길입니다. 원래 제 성격 자체가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해 친구라고는 거의 이 녀석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맞습니다. 녀석은 아무 말 없어도 어쩌면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사이입니다. 23년을 한 이불 덮고 살아온 아내보다 더 끈끈한 관계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아, 잘못 표현했습니다. 각방 생활한 지 족히 15년은 넘었으니 살을 맞대거나 한 이불을 덮은 것도 고작 8년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30년 지기를 아내는 따라가지 못합니다.


세 시간 정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지하철 좌석에 몸을 묻으니 금세 곯아떨어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일이 쉬는 날도 아닌데 은근히 무리를 한 셈입니다. 이런 걸 두고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고 하던가요? 하루 동안 쓸 에너지에 분명 친구를 만날 에너지는 없었을 겁니다. 그걸 임의로 끌어다 썼으니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늦은 시간에 타서 그런 것이겠지요? 눈에 띄는 사람마다 활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눈동자가 이미 반쯤 감긴 사람들도 여럿 보이고, 삼삼오오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도 나른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말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절대다수일 정도로 고즈넉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도 마음 같아선 이부자리라도 깔아주면 금방이라도 취침 모드에 돌입할 기세입니다.


배고프면 배를 채우는 것에만 혈안이 되듯 어서 가서 자리에 눕고 싶은 생각만 듭니다. 결국은 또 이렇게 스러져 갈 하루였습니다. 지내 놓고 보니 이미 보냈던 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오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이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오늘과 별다름이 없는 하루겠습니다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내일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우선은 좀 쉬어야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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