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오는 부산
삼백 서른 번째 글: 여행에는 젬병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주중에 맞이하는 반가운 휴일이라 이번에도 역시 부산에 오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어디 갔다 올 생각이냐며 묻던 아내가 또 부산이냐며 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다닌다면 제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본의 아니게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되다 보니 오늘처럼 시간이 나면 자주 다니려 합니다. 물론 멀리는 절대 안 갑니다. 가령 가는 데 혹은 오는 데에 세 시간 이상 걸린다면 어지간해서는 집에서 나서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고생할 것 같아 그러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여행 가면 하루 종일 걷는 게 일입니다. 왕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자체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나름의 소신이랄까, 죽기 전까지 핸들을 잡지 않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보니, 여행 간답시고 집을 나서면 대중교통의 편의성을 가장 염두에 두게 됩니다. 가장 만만한 곳이 그래서 제겐 부산입니다. 그나마 27년 동안 한 번도 못 가봤던 서울을, 올 들어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 여행지 리스트가 하나 더 늘게 된 셈입니다.
전 여행엔 젬병입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디로 가야 뭘 볼 수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행선지를 정했으니 무작정 티켓부터 끊었습니다. 그런 제겐 계획도 필요 없습니다. 뭐, 가서 닥치는 대로 보고 오면 되지, 하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툭하면 오는 곳이 부산입니다만, 앞에서 얘기했듯 늘 가던 곳만 가다 보니, 시쳇말로 요즘 한창 뜨는 핫플이 어디인지는 제가 알 리가 없습니다. 솔직히 그런 건 일말의 관심 따위 없습니다. 아내는 그래도 이왕 가는 김에 검색도 해서 요즘 핫플로 가 보라고 하지만, 굳이 나이 젊은 척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막말로 기차를 타고 와서 아무 데도 안 가고, 부산역 대합실에 앉아 있다 가기만 해도 저는 괜찮으니까요.
저에게 여행이란 무슨 도장 깨기 하듯, 여기 가서 사진 찍고, 저기 가서 흔적 남기는 게 아닙니다. 그냥 한 자리에만 있다 와도, 단 한 군데만 들러도 저에게 '쉼'이 된다면 그게 진정한 여행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또 이렇게 부산을 왔습니다. 딱 두 군데만 머릿속에 넣어놨습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과 다대포해수욕장입니다. 매번 보는 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는 보고 가야겠지요. 이제 슬슬 바다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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