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서른두 번째 글: 가족이 도대체 뭘까요?
아내의 생일을 맞아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 속에 함께 기거하는 네 사람이 가족이라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나 싶은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사전에서는 가족과 식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족: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
식구: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우리 네 사람을 조명해 보면 분명 가족이 맞는 걸로 보입니다. 우리 두 부부를 중심으로 아들과 딸이 함께 살고 있으니 가족이 맞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공동의 정서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제가 말한 이 '공동의'라는 부분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가족'의 관계가 아니라 '식구'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꽤 오래전에 '가족'과 '식구'의 의미에 대해 이 매거진 어딘가에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 저는 이렇게 썼던 것으로 압니다. 혈연관계를 전제로 한 관계가 '가족'이라면, 비록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해도 공동생활만 하거나 밥만 같이 먹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식구'에 그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은 공동의 정서를 갖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공동의 목적까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갖기 이전에 그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공동의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가족을 두고 생각할 때마다 한 편의 시가 떠오르곤 합니다. 물론 이 시인이 제가 생각하는 선에서의 그런 감정을 갖고 본 시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차피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독자에게 와서 재해석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에 제 해석에 대해 객관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내의 아파트에는 나와 아내와 아내의 아이들이 함께 잔다
나는 침대에서 홀로 자고
아내는 양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품고
방바닥에서 씩씩하게 누워 잔다 ☞ 출처: 정병근,「아내의 아파트」중에서 발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아내의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위 시의 첫 줄을 올바르게 쓰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아파트에는 '나'와 '아내와 아내의 아이들'이 함께 잔다
진정한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모두가 한 세트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단일체와 '아내와 아내의 아이들'이라는 복합체로서 말입니다. 모든 가족이 이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살아가는 가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이 경우엔, '가족'이라는 말보다는 '식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이겠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족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신지요? 아니면 식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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