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여름
삼백 서른세 번째 글: 많이 덥긴 덥습니다.
21년 전 5학년을 맡았을 때 제자의 결혼식이 있어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습니다. 저는 여자는 아니나, 한 번씩 일이 있을 때마다 옷장 문을 열어보고는 입을 옷이 없다며 투덜대던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어떤 옷을 살펴봐도 입을 만한 옷이 없더군요. 그래도 이런 날은 최대한 깔끔하게 입어야 한다며 어제저녁부터 아내는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어떤 옷을 입으면 그 옷이 잘 어울리는지, 혹은 어떤 자리에는 어떤 차림을 하고 나가야 사람들이 입을 대지 않는지 따위엔 하등의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 보니 외출할 때마다 아내가 제게 뭐라고 하는 게 무리는 아닌 것입니다. 이 옷 저 옷을 들었다 놨다를 몇 번 반복하던 전 결국 만인의 공통 복장인 양복을 입기로 했습니다. 1년을 통틀어 많이 입어 봤다 세 번 이상은 입지 않는 게 양복인 점을 감안한다면 저로선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조만간 옷 좀 사야겠군.'
장롱 문을 닫으며 혼잣말을 해 봅니다. 그래도 별 소용은 없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마니까요.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라며 썩 잘 입지는 못해도 타인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옷을 입어서 안 된다고 하지만, 그쪽으로는 통 관심이 없는 저는 매번 아내와 부딪치곤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20년쯤 지나면 혼자 다녀야 해."
지인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에게 어딜 가자고 요구하는 것은 꽤나 무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자리에 가야 하는지 혹은 가지 않아도 되는지는 각자가 결정할 일입니다. 물론 오늘 같은 자리엔 부부동반이 아닌 저 혼자 가는 것이 경우에 맞고요.
양복을 걸치고 나오자마자 금세 후회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더운 줄은 몰랐습니다.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려니 연세가 지긋한 두 분이 지나가며 말합니다.
"오늘 와 이리 덥노?"
"여름이니까 더븐 기 당연한 거 아이가?"
"어이! 아직 5월 중순도 안 지났는데 무슨 여름 타령이고?"
"누스도 못 밨나? 오늘 30도라 안 카나. 그 카믄 여름이지, 이기 여름이 아이믄 머고?"
두 어르신의 말이 틀린 데가 없습니다. 5월 중순의 막바지, 그래도 이렇게 더운 날씨라면 지금이 바로 여름인 겁니다. 어느새 여름 속으로 들어와 버린 저를 봅니다.
슬슬 걱정이 밀려옵니다. 다른 계절보다도 유달리 여름을 더 심하게 탑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이 무시무시한 폭염의 한가운데를 또 어찌 헤쳐 나갈지 염려가 앞서지만, 늘 그러했듯 길고 긴 여름을 무탈히 보낼 수 있도록 자기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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