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O(영, Zero)인 줄로만알았다. 하지만 5를 품고 더 동그란 원으로 완성되는 중이었다.
오월은 빠글빠글한 달이다. 과거의 통증을 딛고 올라 현재의 축제 속에서 부대끼고 또 부대끼며 고통을 잊으려는 달이다.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에 얼굴을 맞대고 꽃을 삼킨다. 나는 눈을 감고 그늘을 찾아 평화로 침잠한다. 안식을 향한다. 나는 왜 기껏해야 나를 찾는답시고 방황하는지 모른다. 공작소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품을 수 있는 가슴이 크지 않음에 탄식한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서 우리는 책을 얘기하고 언어에 대해 날을 세웠으며 감성의 노동을 깊게 들여다보고 영화로 확장해 가는 시간에 마음껏 빠졌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 프랑스 용어로 '새로운 물결, ' 그 중심에 있었던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를 촘촘히 열어 델핀(영화 녹색광선)의 눈물을 닦아주고 폴린(영화 해변의 폴린)의 존재와 어정쩡함에 대해 상상했다.
낭송하는 감성이 가야 하는 길, 감정 노동에 대비되어 스스로를 수용하는 힘, 타인을 이해하는 힘으로써의 그 '감성'에 대해 우리는 넋을 놓았다.
5월의 굿즈, 꿈을 나누는 메모지
작가를 듣는 동안, 다시 배치된 우리 안의 감성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흐르는 경이로움을 목격한다. 내가 기꺼이 냈던 이 북토크를 향해 걸어온 용기를 조용히 칭찬한다. 이래서 내 귀로 흐르는 목소리가 삶이 되는 거구나. 이래서 우리가 만나하는 이야기가 진심이 되는 거구나.
온라인의 환상을 오프라인의 실체로 다독이러 온 사람들에게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알고 싶다. 사람을 알고 싶다. 악수하며 느끼고 허그하며 깨닫는다. 세상은 나의 실체를 현상으로 밝혀준다. 내가 살아있다.
매일 하는 왼손글씨로 순간을 기록했다. 신성한 마음으로 혼자서 수줍게 숨어하던 삐딱한 글자들이 내 마음을 품고 나의 감사를 나눈다. 부끄러움 속에 들어있는 나의 자의식들이 자라나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밀란 쿤데라를 전하는 작가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의 위안과 연결되는 그의 가치를 알게 되어 기뻤다.
쥘베른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뚜르게네프와 스피노자를 메모했다. 여전히 겉만 핥아 온 나의 깊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시간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전하는 감정의 다양성을 실체화하는 과정을 들으며 작가의 과거 시간마저 질투가 났다. 나는 이제야 왔지만 다행이라 여겼다.
인생이 예술인 능동 예술가, 낸 골딘을 추천받았다. 북토크 후 바로 낸골딘, 모든 아름다움과유혈사태(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2024)를 목격하러 갔다. 들끓는 용암 같은 사진작가, 낸골딘에 전율한다. 그리고 해변의 폴린에게 잔잔하게 배운다.
책과 언어와 영화와 감성은 끊임없는 흥분과 두근거림이다.낯섦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지금 라디오에서 흐르는 리스트와 벨리니를 들으며 나의 북토크후기를 마친다. 여전히 목마르다.
5.18이었다 - 흡혈의 습성으로 남은 '하나'의 찌꺼기를 여전히 주시해야 할 것이다. 무고한 유혈이 반복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