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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y 28. 2024

당신이 서 있는 호수

122.

신호등의 불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가가 자꾸 뒷목을 잡아채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려 봅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요?

이름도 모르는 들풀들과 꽃들이 이룬 작은 숲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내리쬐는 햇빛과 뜨거운 지열에도 아랑곳없이

연스레 만들어진 그늘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지요.

대뜸 폰을 열어 셔터를 눌렀습니다.

당신에게 이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얼마 뒤 당신도 내게 사진 하나를 보냈습니다.

막 달려가다 멈춘 듯한 솜털 같은 몇 점의 구름 아래로

은빛을 뽐내는 물결이 보였습니다.

고즈넉한 그 정취가 어찌나 반갑던지요?

분명 당신은 호수라고 했지만,

내 눈엔 파도 이는 바다처럼 보였습니다.


문득 저 속에

조금 전의 그 의자를 가져다 두고 싶더군요.

말없는 호수를 눈앞에 둔 채

의자에 앉은 당신과 그 옆에 나란히 선 내가

마냥 호수만 바라보면 좋겠다 싶더군요.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같은 공간에,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내겐 행복일 테니까요.


당신이 있어서

상상 속에서라도 당신 곁에 머물 수 있어서

또 한 번 행복에 겨운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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