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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03. 2024

기묘했던 꿈

삼백 마흔두 번째 글: 설마 현실이 되진 않겠지요?

어제 참 기묘했던 꿈을 꿨습니다. 안 그래도 긴 잠을 자지도 못했는데, 꿈까지 꿨으니 어느 정도는 잠을 설친 셈입니다. 제가 꾼 꿈을 굳이 기묘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뭐랄까, 그저 꿈이라고 하기엔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악몽이 따로 없는 것이라 할 정도겠습니다.


꿈속에서 스마트폰으로 메일이 왔음을 알리는 아이콘이 떴습니다. 발신자는 브런치스토리 운영팀, 저는 상세한 내용을 보기도 전에 그들이 무슨 일로 제게 메일을 보냈을까, 하며 궁금했습니다. 뭔가 불순한 글이나 상업성 혹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글을 올려 타인을 불쾌하게 한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얼른 메일을 열어 보았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저는 기겁하고 말았습니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평소에 저희 브런치스토리를 자주 이용해 주시고, 많은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한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에 브런치스토리 개편을 맞아, 애석하게도 작가님의 계정이 더는 이곳에서 운영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운영팀의 장시간 회의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시더라도 널리 이해하시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 메일을 보낸 시점에서 한 달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기간 동안 작가님께서 써놓으신 글들을 안전한 곳에 백업해 놓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가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본 계정 폐쇄 사유: 질 낮은 글의 대량 생산

브런치스토리 운영팀 드림.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계속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가는 언젠가는 누구에게라도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글을 썼는데 너무 한 처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반면에, 그들의 결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도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큰 일이었습니다. 1300편이 넘는 글을 어디에 백업해 놓으란 말인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처음 몇 개는 컴퓨터에 폴더를 만들고 해당 글을 마우스로 드래그해 한글 프로그램에 붙여 넣기 작업을 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고 나서 한참 있다 보니, 폴더 안에 글이 쌓이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일이 너무 큽니다. 몇 개의 글만 그렇게 하다 녹초가 될 지경입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가 쓴 글을 하나하나 출력하기로 합니다.


이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책상 위에 쌓이는 원고를 보던 저는 A4 박스가 필요할 것 같아 어딘가에서 박스를 들고 옵니다. 족히 세 시간은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출력한 것들을 박스에 담으니 못해도 박스 하나는 거뜬히 나올 정도입니다. 이 많은 글을 도대체 언제 다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출력하고 있으려니, 아직 1000일 글쓰기 도전도 못 끝냈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젠 어디에 글을 쓸까, 하는 걱정이 생겨납니다. 운영팀에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볼까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질 좋은 글을 쓸 테니, 계정만이라도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순간 헛웃음이 났습니다. 꿈속에서도 참 구차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했다면 물러나는 게 그나마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출력물을 보고 내내 한숨만 짓다 잠에서 깼습니다.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만 않았다 뿐이지, 저에겐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0%겠지만, 꿈에서 깨고 난 뒤 저도 모르게 다짐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질 높은 글을 써야겠다.'

과연 그게 제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십년감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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