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시든 꽃
삼백 마흔한 번째 글: 시든 꽃도 꽃이겠지요?
제가 사는 대구에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공공도서관이 있습니다. 원래는 대구시립중앙도서관으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최근 이삼 년 상간 내로 리모델링한 후 재개관한 곳입니다. 글쎄요,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교적 최근에 재개관했으니 시설면에서는 꽤 괜찮은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체로 2주일에 한 번 정도 저는 이곳에 들릅니다. 그곳은, 현대식으로 꾸며 놓아 마치 커피 전문 매장 같은 분위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보유 서가가 많은 편인 데다 무리해서 책장만 들여놓은 게 아니라, 여유 공간을 많이 확보한 탓에 갈 때마다 쾌적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오늘도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중앙로역에서 하차 후 10분 남짓 걸으면 갈 수 있으니, 더러 귀찮기는 해도 못 갈 만한 거리는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도서관까지 가는 경로는 모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상으로 바로 올라가 동성로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중앙지하상가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소요 시간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동성로를 가로지르게 되면 그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야 하고, 종종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통행에 방해를 받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지하상가를 통해 가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지하 특유의 갑갑하고 눅눅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원만해서는 동성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본 적은 없으나, 1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이 절대 다수인 그곳의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괜스레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저라는 사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50대가 넘은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활짝 피어난 수많은 꽃들 중에 다 시들어버린 한두 송이의 꽃이 눈에 들어오는 형국입니다.
만개한 꽃이 있다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한 꽃도 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젠 시들어 버린 꽃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 들어 저는 자주 그런 걸 느끼곤 합니다. 이제는 다 시들어 가고 있는 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어디에 가느냐, 혹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그 판단은 달라집니다.
종종 지하철을 이용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 보면 이용자들 중에서 제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반면에 오늘처럼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동성로로 가면 이내 저는 나이가 한창 많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도 '노 시니어 존'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그렇게 써 놓은 팻말조차 본 적이 없는데도, 왜 갈 때마다 그곳은 제게 그런 느낌을 받게 할까요? 게다가 정작 아직 '시니어'라고 부를 만한 나이가 안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