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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02. 2024

너를 위한 시

0721

웃는 수달은 노랑이다


한때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면 그를 상상하며 시를 쓴 기억이 문득 났다.


색으로도

동물로도

꽃으로도

사물로도

까마득한 별나라 토끼가 되어 뜨개질하듯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시어로 급속냉동했다.


무수한 단어들이 그의 뒷모습에서 흘러내려 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내 몸에 달린 주머니마다 터지도록 담아 돌아오곤 했다.


집에 와서는 주머니 가득 들어있는 뒤죽박죽 단어들을 방 안에 펼쳐놓고 한참을 감상했다.


대부분 단어들은 서로 손을 잡기에 낯설었고 어울리기 꺼려했으나 잘 구슬려서 짝지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리워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움이 동네의 우물처럼 귀하고 산 아래 약수터처럼 말라버린 요즘에 글쓰기는 유일한 그리움작동기다.


잘 그리워하지도 못하면서 잘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움을 욕망으로 바꿔치기해 버린 슬픈 이 시대에 글을 쓸 수 있어서 아득하게 멀어져 가려는 저 그리움의 바지끄덩이를 그나마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젊은 날 지나쳐간 이들에 대한 시들은 장롱 구석 서랍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그 그리움의 흔적들은 나의 맹장 옆과 췌장 뒤편에 남아 있다.


다시 잊힌 다짐을 기록한다.


만나고 돌아가는 그들의 등짝에 칼 대신 시를 꽂아야지.


무수하게 주고받은 오해의 언어들을 채에 걸러 고운 단어들만 골라 목걸이를 만들어 주어야지.


그들을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시의 주단을 깔고 그리움의 벼랑 끝까지 시나브로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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