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 때문에 행동에 있어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이는 그 생각들이 타인에 비해 너무 두드러져 주위의 눈총을 받는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엇에든 못마땅해하는 모습이 두드러져 주변 사람들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 어떤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느냐에 따라 형성된 거대한 틀이다 보니, 이미 한 번 형성된 성격이나 사고는 웬만해서는 바꿀 수가 없는 형편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그릇대로 사는 법이다. 자기가 생각한 만큼, 자기 눈에 보이는 만큼, 자기 귀에 들리는 만큼 상황과 현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어제 이 매거진에 올렸던 글에서처럼 누구의 눈에는 보이던 특정한 형상이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 거냐고. 그건 어쩌면 내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이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 한계가 내 사고를 제한해 버리고 만 탓이다.
제한된 나의 사고는 특히 타인과의 대화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대화의 장에서 참석자의 평균과 비교했을 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움직이는 것보다는 대화를 즐기게 된다. 그건 움직이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정말 대화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화 그 자체를 즐기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라고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라고 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고 덜 들고를 떠나 우리가 대화를 좋아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할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그 많은 할 말을 들어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에 있다. 논리적으로 어패가 있지 않은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늘어나는데, 들어줄 사람은 줄어든다? 1대 1로 대응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들어줄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은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여기엔 분명 나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도대체 어딜 가야 그들의, 아니 이제는 우리의 말을 들어줄 사람들을 찾게 될까?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자기 표현력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각종 사이트의 게시판이나 뉴스의 댓글판, 심지어 스포츠 실시간 중계 코너에 몰려든다. 거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어떤 일정한 틀이나 규칙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내키는 대로 발설하면 그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대체로 밑도 끝도 없다. 그들은 벼랑에 서 있는 것이다. 그곳이 아니면 그 어디에 가서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곳은 없다.
한편,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그나마 자기 표현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예술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거나 영화를 만든다. 물론 글을 쓰는 행위도 이 속에 포함된다. 알다시피 글은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형식과 틀이 요구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규칙적인 글쓰기가 요구되곤 한다. 혼자서 글을 써서 간직하고 읽는 이들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이는 가운데에도 대중에게 글이 공개되고 읽히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된다. 왜냐하면 그건 그 자체로 자기 치유력을 갖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최후의 보루가 된다. 그 자리가 아니면 그 어디를 가든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은 대체로 없다. 난 장담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처럼 우리에게 하루 한두 시간씩 마이크가 주어지고, 그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였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온라인 글쓰기에 열광하는 사회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한 개인 것은 자신이 말하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더 들으라는 신의 섭리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왜 나이 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말이 많을까? 그건 아마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 나이가 덜 든 사람들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표현할 대체 수단이 비교적 많다는 것. 오히려 입을 닫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에게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걸 감각적으로 안다. 이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은 의외로 그걸 잘 모른다. 입을 닫고 있기보다는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쁘다. 왜냐하면 이 자리가 아니면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좀처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눈총을 받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며 다짐하곤 한다. 다음부턴 꼭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나 역시 20대, 30대엔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연령 차이가 나는 직장 동료와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런 생각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수다를 떨 때였는데, 40대 후반의 한 동료가 꽤 오래전에 종영된 TV 프로그램에 대해 얘길 하고 있던 중이었다. 딱 꼬집어 말하자면 80년대 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20대와 30대는 꽤 신기해하며 그 동료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40대 초반의 여자 동료는 은근히 자신은 우리(40대 후반의 그 동료와 나) 쪽이 아니라 맞은편에 있던 20대와 30대 쪽이라며 우기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40대 후반의 그 동료가 한마디 말을 던졌다.
"당신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 아니야? 왜 그쪽에 가서 민폐야?"
그 여자 동료는 한사코 아니라고 손사랫짓 했고 모두가 그냥 웃고 넘겼지만, 그녀는 꽤 불쾌해하는 눈치였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듯 누구나 자신은 나이가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을 테다.
문득 그런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