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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7. 2023

이게 나라냐

열한 번째 글: 그러면 이게 국민이냐?


올해도 어김없이 물난리를 겪고 있다. 지난해에 잠겼던 지역은 또 잠겼을 테고 이미 한 번 수해를 입은 데다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지역은 또 한 번 난리를 겪고 있을 테다.

이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령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떤 처방을 내렸다고 하자. 그러면 웬만해서는 그 처방에 따른다. 같은 증상으로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별 수가 없다.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건 누가 생각해도 명백한 사실이다. 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이건 안 되는 것인가?


해마다 수해 피해가 발생한다.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가 물에 잠긴다. 태풍에도 끄떡없던 나무가 뽑혀나가는가 하면 자동차가 물에 잠긴다. 저지대에 있는 주택이 침수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물에 휩쓸린다.

장마가 끝나면 한동안 매스컴에서 떠들어댄다. 재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입은 피해라느니 안전 지시에 따르지 않아 피해가 더 커졌다느니 난리법석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여기저기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뭔가 뚜렷한 근본적인 대책을 성토한다. 수재민 돕기 성금 모금과 같은 활동도 전개된다.

이만한 난리를 겪었으면 차후에 뭔가 하나라도 달라져 있어야 하고, 최소한 달라지는 움직임들이 눈에 띄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 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웬만해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때뿐인 것이다. 똑같은 유형의 수해는 어차피 1년 동안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니 지금 당장은 수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년이 지나 다시 비가 오기 전까지는 비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린 그렇게 잊어간다.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일상으로 함몰되어 간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사실상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자연재해이므로 인재로 인한 피해와 견주어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자연재해도 대비만 잘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얼마나 대비를 잘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가장 만만하고 쉬운 핑곗거리부터 찾아 나서고 만다.

늘 그랬듯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린 정부를 탓한다. 그 어떤 비난을 퍼부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상대가 정부라는 얘기다. 정부에게 떠넘기기만 하면 다른 모든 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일일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 수해가 난 곳을 어떻게 손을 보면 다음 해에 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지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앉아서 정부 탓만 하면 된다. 그게 현재의 우리로선 가장 쉬운 방법이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부 탓을 하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끊어진 도로를 보수하는 것도 쓰러진 나무를 일으키는 것도 물에 휩쓸린 사람의 시신을 수색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지 우리 같은 일개 개인의 역할은 아니지 않냐고 말이다.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국회에는 그리고 정부에는, 민생 즉 서민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들 개개인의 인성이나 역량 혹은 자질에 하자가 있는 건 틀림없겠으나, 그 하자 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손으로 뽑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자 많은 사람이 정부의 고위관료로 선출되기 직전에 여론을 일으키거나 청문회에서의 꼼꼼한 검증을 통해 낙마시키지 않은 우리 탓이 더 클 수도 있단 얘기다.

이게 나라냐,라고 다들 말한다. 참, 하기 쉬운 말이다. 같은 논리로 얘기하자면 이런 나라에 사는 국민들인 우리에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국민이냐?


1번을 뽑느냐, 2번을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위정자들의 흑백논리식 여론몰이나 정치질에 우리까지 편승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 이번에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수해 현장에 어떤 인간들이 찾아와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총리라는 사람은 찾아왔는지,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찾아와 어떤 지시를 하고 갔는지, 당대표라는 사람들은 누가 먼저 왔고 누가 더 현실적인 지시를 하고 갔는지 등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도대체 그런 심각한 현장에 와서 감히 어떤 인간이 미소를 짓는지, 수해복구한답시고 일 조금 했다고 속 편하게 앉아서 컵라면이나 먹고 있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위인들이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를 색출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몰지각한 위인이 파란색이든 빨간색이든, 심지어 노란색이든 물어뜯을 대상이 필요한 이 시점에 적절한 희생양이 제공되기만 하면 한동안은 그에 대한 난도질로 이어진다. 정치인들은 또 이때다 싶어 갈라 치기로 여론몰이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배는 산으로 가고 만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선 수해복구는 물 건너가 버렸다. 아직은 1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것이다.

그런 자질을 가진 이가 1번이든 혹은 2번이든 그것도 아니면 그 외의 번호이든 숨어 있는 그 원석을 우리가 찾아내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 놓고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린 기꺼이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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