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ul 17. 2023

사백번 연습

0400

400번의 여행을 떠났다.

때로는 간헐적으로 때로는 연속적으로 미지의 그곳으로 떠났다.

목적지가 불분명해서 배회하다가 돌아온 날이 부지기수였다.

펜만 들고 떠난 여행이기에 몸은 홀가분하지만 펜 끝에 글이 맺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매번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써서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은 죄악이 아닐까. 혹은 민폐가 아닐까.

타인의 시간을 뺐는 것은 물론이고 시선을 뺐고 감성을 뺐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글쓰기의 막막함과 알 수 없는 설렘이 교차한 지난날들을 100호 단위로 되짚어 보자면 그 여정은 이러하다.



제1호 - 2022.3.10

처음으로 브런치스토리(그땐 브런치였다)에 올린 글은 놀랍게도(=우습게도) 소설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첫 글부터 연재를 구상했고, 난생처음 소설이라는 문학글쓰기를 시작했다.

https://brunch.co.kr/@voice4u/1#comment

이 소설은 추후 텀블벅을 통해 오디오북으로 펀딩에 성공했고, 출판사과 종이책 출간계약까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400호를 발행하는 오늘 아침에 이 소설의 최종편집본 수정사항을 출판사에게 보냈다.

이번주에 인쇄에 들어가 이달 25일에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제100호 - 2022.6.14

고스란히 100일을 소설 쓰기에 바친 글쓰기 100호였다.

난생처음 100일 동안 글쓰기를 도전했고 성공했다.

https://brunch.co.kr/@voice4u/101

나는 101일째 되는 날 브런치에서 그간의 100일을 이렇게 소회 했다.

쓸 이유만큼 못 쓸 이유도 찾지 못했다



제200호 - 2022.9.25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왔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니만큼 글쓰기에도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즐거운 일들이 좋은 계절에 많이 일어났고 나는 쉽게 유혹당했다.

https://brunch.co.kr/@voice4u/202

이쯤 달려오니 글쓰기가 절망을 맛보는 일인지 기회를 거머쥐는 일인지 헤갈렸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타기 같았다.

언젠가는 편안하게 글 쓰는 날이 오리라는 환상을 품으며...



제300호 - 2023.4.8

그 사이 다시 봄이 왔다.

타이틀로 000호 특집 유난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글쓰기가 생활이 되었고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https://brunch.co.kr/@voice4u/301

어떠한 큰 목적이 없더라도 생각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다짐한 듯하다.

글을 쓴다고 당장에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내면 깊숙하게 의미 있게 뿌리를 내린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글쓰기 이전의 삶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휘둘려 둥둥 떠다니는 부유하는 방식이었다면 글쓰기 이후의 삶은,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 가는 것이리라.

앞으로  500호를 발행할 즈음에는 어떤 내가 되어 나를 만나고 있을까.

글쓰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 중 의미 있는 하나는 이게 아닐까.

쓸모는 결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과정자체만으로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400번의 연습을 하고 있으며 과정을 행복하게 지나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나라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