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l 18. 2023
큰 비가 지나고 나면 무엇이 올까.
긴 글쓰기가 지나 책이 되면 무엇이 올까.
거대함이 지나고 난 후에는 변혁이 있다.
변혁은 리폼이다.
이전의 모양을 다른 형태로 재구성한다.
다르게 폼만 잡아도 본질이 개선되기도 한다.
구성물은 유지하면서 성질을 바꾸는 일은 외부에서 거들어야 한다.
고통이 따르고 수고가 있어야 하니 스스로가 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은 인간에게 이런 식으로 개입하고 잔소리한다.
취약한 부분을 다시 살피라고 재촉한다.
그것은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여한다.
묵은 가치와 고인 생각을 비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자연의 호통은 반복되고 빈번해질 것이다.
장마를 의식하지 않고 한순간도 그것을 떠나 생각하지도 글 쓰지도 못한다.
비가 그치고 난 후 바로 뜨거운 태양이 그 자리를 꿰차고 호령할 것이다.
눅눅했던 마음속 세간살이들을 꺼내 리폼해 본다.
방치하면 구겨진다
마음도 그렇고
의지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더 늦어지기 전에 살펴야 쓸만하게 돌이킬 수 있다.
책이 세상으로 나온다고 완성이 아니다.
책이 제 구실을 하도록 의관을 갖추고 임무를 부여하고 생명을 수시로 불어넣어 줘야 한다.
어렵게 태어난 내 책을 서점에 환자처럼 눕혀놓아선 안된다.
그건 우아한 방치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바로 걷도록 신을 신겨주어야 한다.
책의 갈피사이 엉덩이를 찾아 두드리며 독려해야 한다.
독자에게로 어서 달려가 안기렴!
내가 낳았으나 너를 기를 이는 세상이란다!
그곳에서 너를 단련하고 커나가렴!
너의 운명이란다!
책과 작가의 리폼은 이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글쓰기도 리폼이다.
어제의 나를 내일의 나로 고스란히 옮기는 건 글쓰기가 할 일은 아니다.
글쓰기는 안전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다.
바꿀 의지만이
선한 불만들이
글을 쓰게 한다.
나를 다시 고쳐 쓰고 싶어서
나는 이토록 글을 쓰는 것이다
퇴고는 그래서 원고지가 닳는 게 아니라 그 끝에서 내가 정교해진다.
나를 변혁하지 못하는 글은 타인의 눈에도 하찮은 고물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