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n 07. 2024

연휴 두 번째 날

133일 차.

어쩌면 황금 같은 연휴의 두 번째 날이 벌써 오고 말았습니다. 지금쯤 그 어느 누군가는 상당히 안타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탐탁하지는 않아도 오늘 학교장 재량휴업일을 맞아 이렇게 집에서 쉬고 있으니, 게다가 한가롭게 아이스 바닐라 라떼나 한 잔 하면서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뭐, 천국이 따로 있겠습니까? 괜찮은 장소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곳이 천국인 것이지요.


사실 이틀 전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학부모님 한 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오늘이 왜 학교장 재량휴업일이 되어야 했는지, 굳이 그렇게 해서 학교를 쉬게 했어야 했는지 그저 아쉬울 뿐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저도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렇다고 쳐도 학부모 입장에선 오늘과 같은 조치가 얼마나 뜬금없고 황당할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선생님들 입장에선 알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결혼 전이거나 결혼을 했어도 아직 아이가 없거나, 혹은 아이가 있어도 미취학 아이가 있는 선생님들은 더더욱 그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울 겁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작년 연말에 차기 연도의 교육과정 수립을 위한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그 워크숍이 있기 전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꽤 많은 문항을 바탕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됩니다.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학생과 학부모는 무엇을 원하는지, 또 선생님의 입장에서 폐지되어야 할 일과 새로 추가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의 시간이 마련됩니다. 그때 제 눈길을 끄는 한 분석 결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재량휴업일 실시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혹시 눈치채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본교의 70여 명이 넘는 교직원 중에 2024학년도의 두 번에 걸친 재량휴업일 실시에 대해 단 한 명이 반대했는데, 그 한 명이 바로 저였다는 겁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반대한 저 사람은 도대체 뭐야,라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기어이 실시되고 만 재량휴업일입니다. 맞벌이 때문에 아이를 하루 종일 집에 방치해야 하는 입장은 그다지 고려할 사항은 못 되는 듯합니다. 누군 아이 안 키워 봤나, 하는 생각이 있었을 테고, 하루쯤은 어떻게 해도 케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판단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반대한다고 해서 재량휴업일 계획이 없던 일리는 없습니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이왕 이렇게 역시 휴업일의 오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올 연말에도 똑같은 설문 조사를 할 겁니다. 당연히 저는 이번에도 반대 의사를 표명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나른한 오후입니다. 밥 한 끼 정도는 건너도 무방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휴일의 여유를 이용해서 스타벅스 온 김에 글이나 몇 편 쓰고 가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