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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08. 2024

우리가 마주친 건 우연입니다.

124.

어제 그 좁은 골목길에서 당신과 마주쳤습니다.

가던 길을 그대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인사를 건넨 뒤에 뒤돌아 서야 했습니다.

행여 당신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의 끝이

당신과 나란히 같은 길을 걷는 것이 되어선 안되니까요.


대략 십오 미터쯤 떨어져 있었을까요?

나를 본 당신은 크게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띈

그 길로 접어들면

당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막상 당신 앞에 선 나 역시도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습니다.


골목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며

눈을 치켜떴습니다.

저 멀리 당신이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내가 당신을 못 찾을 리 없습니다.

한 번을 마주친 것까지는 그럴 수 있어도

두 번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가장 가까운

또 다른 골목 안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당신의 발걸음과 시간을 계산하고

골목을 빠져나와 당신이 있던 반대편으로 갑니다.

뒤를 돌아보니 인파에 묻혀

골목 끝으로 가고 있는 당신이 보였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신에겐 우연이어야 했습니다.

하필 그 시각에 내가 그곳에 나타난 것도,

작은 교차로를 눈앞에 두고

당신과 내가 마주하게 된 것도

우연으로 설명되어야 했습니다.


딱 그 시간에 맞닥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하고 움직였는지,

단 한 번 그렇게 마주치길 기대하며

설레는 그 마음을 붙들고 갔는지 들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 간 보람은 충분했습니다.

당신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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