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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4. 2024

당신의 뒷모습

125.

어제는 운이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당신의 뒷모습을 본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또 한 번 당신을 보았으니까요.

데자뷔라고 하던가요?

마치 그날 그 시각으로 내 몸이 옮겨 간 듯한 착각이 들었답니다.


한동안 당신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그러는 나를 보건 말건 간에

앞만 보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을 보는 게

나로선 더 마음이 편한 일이니까요.

만약 당신과 내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내가 당신을 빤히 쳐다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사실 내가 서서 당신을 바라본 그곳은

한 뼘의 햇빛도 가릴 만한 데가 없는 곳입니다.

팔뚝으로, 등으로, 그리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면 믿어줄 건가요?


한 20초쯤 그렇게 당신을 바라본 모양입니다.

누군가가 내 옆에 와서 어딜 그렇게 보고 있느냐고 했습니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 내려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내내 눈으로 좇고 싶었지만

더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괜한 오해를 사면 나도, 그리고 당신도 곤란해지니까요.


문득

당신을 얼마 동안 보질 못했는지 손가락으로 헤아립니다.

열 손가락이 모자랐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못 보고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마주치게 될까요?

그곳이 어디든

내 눈앞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생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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