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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1. 2024

따가운 햇살

삼백 마흔여덟 번째 글: 작년 이맘 때는 이렇게......

팔뚝에 내리 꽂히는 햇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날이 더울까요?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하듯 모름지기 여름에 더운 건 지극히 상식적인 현상인 걸 알면서도, 아무래도 날씨가 미친 것 같다는 말만 연신 내뱉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그늘진 곳이 있으면 쥐구멍이라도 파고들었으면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손바닥으로 하늘을 겨우 가릴 만한 그늘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나 그곳이라고 해서 더위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날씨가 미친 게 아니라, 여름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지금도 아직 적응 못하고 있는 제가 비정상이란 걸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적절한 일광욕을 해야 한다며 햇빛을 예찬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덥다고 또 아우성입니다. 그게 사람의 심리인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저라는 사람이 그만큼 깊이가 그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고작 이 정도 더위에, 이깟 뙤약볕에 굴복할 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요즘은 누굴 만나든 인사치레로 날씨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곤 합니다.

"정말 덥네요."

"와, 햇빛이 참 대단하게 내리쬡니다."

보는 사람마다 덥다고 난리입니다. 여름이니까 더운 게 당연하지,라고 속으로 대꾸하며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아닌 듯 꾸며대는 등줄기 사이로 한 줄기의 땀이 흘러내립니다. 그것도 무슨 일말의 자존심인지, 덥다는 인정을 시원스럽게 하지도 못합니다.

"작년에는 이만큼 안 더웠던 것 같은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네요."

몇몇 사람들은 지금의 이 더위를 견디기 힘든지 작년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덥긴 더운 모양입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기억의 오류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마치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던 말이 바로, '작년에는 이만큼 덥지 않았는데'라는 말이었습니다. 분명한 건 작년에도 만만치 않을 만큼 더웠다는 겁니다. 설마 안 덥기야 했겠습니까? 뭐, 요즘이야 가장 더운 곳과 덜 더운 곳이 따로 없는 현실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사는 곳이 오죽 더웠으면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곳인 걸 감안하면, 덥다는 말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상학적으로도 평균기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건 명백합니다. 이상 기온이 시시각각 찾아오고, 점점 얇아져가는 오존층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피부 위에 떨어지는 햇빛은 뜨겁게 느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젠 따갑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아마 언젠가 이 여름이 다 지나간 어느 날, 날씨가 조금 시원해지는가 보다 했다가 금세 추워지면 우린 또 똑같은 말을 하고 살 것입니다.

"작년에 추웠던 건 일도 아니네. 어쩌면 가면 갈수록 더 춥냐?"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나 느낌이 다르듯 더위 역시 우리에겐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이미 확실한 사실은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워도 언젠가는 이 더위도 물러갈 것이라는 것과, 다시 내년에 우리에게 찾아올 더위는 최소한 올해보다는 더 더울 것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햇살이 뜨겁고 또 따갑고,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할 정도로 눈이 부신 여름입니다. 그래서 덥다는 이유 하나로 어영부영하며 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린 많이 겪었습니다. 속 편하게 생각하면 더운 건 하늘의 소관입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원한 에어컨과 가슴속까지 얼어붙게 만들 차가운 음식이 이 더위를 달래준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가 그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더운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금은 더 큰 마음으로 이 더위도 누려봤으면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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