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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12. 2024

글을 쓰는 사람의 속마음

023.

그동안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 들어줄 사람이 없음은 서글픈 일이다. 당신이 언제 기쁜지, 언제 상처받는지, 언제 힘들었는지, 언제 뿌듯했는지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상부터 중요한 사건까지 당신의 모든 일이 상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 이야기야!" "편안하게 좀 살자" "시끄러워" "입 닥쳐" "너는 왜 그렇게 말이 많냐?" 그렇게 말은 소음이 되고 입을 닫게 된다. -> 본 책, 124쪽

인용한 이 대목은 변호사(본 책 저자의 직업)와 의뢰인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속마음이 너무도 잘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얘기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 양을 측량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어디를 가서든 그걸 말하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난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무도 관심을 갖고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자기 PR 시대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기를 알려야 하는 때입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모두가 자신이 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타인의 얘기엔 굳이 신경을 쓸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이치는 더욱 자명해집니다. 겉으로 보기엔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듯 보입니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먼저 얘기를 하고 다음 순서에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니까요.


그런데 정말 자기 순서를 조용히 기다리며 타인의 말을 경청하게 되던가요? 상대편이 한창 말할 때 겉으론 귀담아듣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무슨 말을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하느라 타인의 얘기는 귓등으로 들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집단에선 사정이 달라질까요? 조심스럽긴 하나, 어쩌면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보다 괴리감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못다 한 말들을, 어딜 가서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누르고 누르며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들의 소재는, 요즘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문제에서부터 글을 쓴 사람의 일상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앞선 말한 문제점이 여기에서도 거론되어야 합니다. 사소한 일상부터 중요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치지만, 정작 우리의 말을 듣는 상대방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기성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혹은 청중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시쳇말로 그들은 어지간해선 작가지망생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지만, 작가가 하는 얘기는 대체로 귀를 활짝 열고 듣습니다. 심지어 비싼 비용을 치러 가면서까지 들으려고까지 합니다. 물론 얼마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될 테니, 아마추어 글쟁이의 입장에선 조금도 고까워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굳이 찾아서 들을 만한 가치도 없는 제 얘기를 또 이렇게 여기에 풀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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