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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16. 2024

얼마나 힘들면 받침이 두 개인가?

024.

늙다

글자에서부터 이미 힘들다. '느'는 느긋하게 보이지만, 느려터진 느낌도 감출 수 없다. 거기에 'ㄺ'이 받치고 있다. 얼마나 힘들면 받침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될까. 우리 한글이 원래 상형문자였나 싶게 노인을 잘 표현해 버렸다. ☞ 본 책, 17쪽

요 근래 읽었던 책 중에서 '늙음'을 나타낸 말 중에 가장 명쾌한 표현을 만난 것 같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받침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필요하냐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촌철살인이라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이력이나 초반부 몇십 페이지를 읽어보니 제법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름은 저와 생각의 결이 비슷한 것 같아 읽는 내내 큰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정말 그런 것인지는 완독을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똥인지 된장인지는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늙다'라는 낱말은 글자에서부터 이미 힘든 나타나 있다고 말합니다. 글자 자체도 느려 터져 보이고, 앞서 말했듯 받침까지 개나 되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힘이 든다는 것은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늙다'라는 낱말 자체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한 것이겠습니다.


느긋하게 보이지만 느려터진 느낌도 감출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느려터졌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느긋하게 보이는 건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해도 느려터진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미지입니다. 이미지라는 것은, 타인에게 비치는 인상이라는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느긋한 건 느긋한 것이고, 느려터진 건 느려터진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있게 하는 건 어쩌면 '여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유라는 것은 개인의 정신적인 성숙이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렀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다 못해 그 여유는 경제적인 여건의 정도에 따라 주어지기도 합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경제적인 여건에서 오는 여유가 더 큰 것인지도 모릅니다.


간혹 저보다 연배가 높은 어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고 뒷방으로 나앉은 노인은, 아직까지 모든 걸 틀어쥐고 주지 않은 노인에게 핀잔을 듣는 세상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느긋한 삶을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느려터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느'자로 시작해도 느긋하게 보인다는 말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모를 리도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은 제쳐두고라도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즉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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