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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15. 2024

니들은 안 늙을 줄 아나?

141일 차.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집 앞 파스쿠찌입니다. 방금 전 늘 글을 쓰고 있던 매거진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바깥뜰로 나와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한 젊은 커플이 나와 담배를 피웠습니다. 일단 보기가 좋았던 건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사이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이 점점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피우지 않는 것이 좋겠으나, 그것도 그들이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고마웠던 것은 그리 흐뭇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저에게 글감의 소재를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데, 그들의 얘기가 들려옵니다. 굳이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닙니다. 불과 3m 정도 거리에 있었으니 두 사람이 속삭이지 않는 한 듣지 않으래야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나 할까요?


"야, 여기 물이 왜 이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무슨 커피 매장에 늙다리들이 저렇게 많냐고?"

"아, 난 또 뭐라고. 뭐, 커피 마시러 왔겠지?"

문제를 제기한 남자에 비해 여자의 반응은 태연하기 그지없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반응에 남자가 되물었습니다.

"다른 건 그렇다고 쳐? 여기가 무슨 시장 바닥이야? 자기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떠들면 다른 사람은 어떡하라고?"

사실 이 점은 나이 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맞습니다. 노년에 가까울수록 마치 그들은 그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매장 내에 듣기 좋은 음악이 흐르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이 좋은 곳을 순식간에 시골 장터로 둔갑시켜 버리니까요.

"너무 그러지 마. 우리 엄마도 시간만 나면 친구분들과 이런 데 가서 커피 자주 마신대."

"그래도 어머님은 저렇게 개념 없이 행동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거야 모르지. 우리 엄마도 평소에 말은 별로 없지만, 친구들끼리 모이면 안 그러지 않겠어?"

"아무튼 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 영 자신이 없으면 집에 붙어 있든가."

"네가 말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기준이 얼마야?"

"글쎄, 한 오십이 넘으면 이런 데에 오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오십 대 중반인 제가 괜히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움츠러듭니다. 조용히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와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원래부터 혼자 있으면 굉장히 조용히, 소리도 없이 있는 성격이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나니 그 흔한 기침 한 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떻게 행동하든 자칫하면 진상 아닌 진상을 부리는 나잇값 못하는 추한 사람으로 비칠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의자를 끌어 당겨 노트북 위에 빠르게 글자들을 배열합니다.


좋은 기회를 제가 놓칠 없습니다. 그들이 말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고 그대로 옮겼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들의 대화를 나름으로 재구성해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저 헛웃음만 납니다. 제 나이가 딱 그 젊은 남자가 말한 나이였기에 괜스레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그나마 낫지 않느냐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봅니다. 매번 혼자 와서 바닐라 라떼를 한 잔 시켜놓고 말 한마디 혹은 아무런 소음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조용히 글만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 그럴 만한 나이는 아니라고는 해도 문득 '노 시니어 존'이라는 문구가 생각이 납니다.


그냥 미친 척하고 2층에 올라가 버린 그들에게 한 마디 던져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염병할! 니들은 안 늙을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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