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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6. 2024

'10분만'이라는 마법

142일 차.

어젯밤 휴대폰 시계 알람의 시각을 조정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주말은 약간의 수면을 저에게 더 허락하기로 한 이상, 7시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습니다. 분명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은 그때 일어났어야 했습니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최소한 앉아서라도 알람을 끄는 것과 누워서 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앉아서 알람을 끌 때는 더 자고 싶다는 생각과 일어나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반반이라면, 누워서 알람을 끄고 나면 여지없이 그놈의 '10분만'의 마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에도 누워서 알람을 일단 끈 모양입니다. 그 10분이 결국 2시간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네, 맞습니다. 일어나 앉은 게 아니라 아예 두 발로 방바닥을 버티고 섰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오면 다시 누울 일은 어지간하면 없습니다. 휴대폰을 열어 시각을 확인해 보니 9시 1분이었습니다. 어제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내일은 하늘이 두쪽 나는 한이 있어도 공공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리라, 그러고도 남은 시간엔 글을 쓰리라 다짐했던 저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뭉그적거리거나 아침이라도 먹고 움직여야지,라고 했다가는 노트북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솔직히 일어나자마자 곧장 간다고 해도 자리가 없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얼른 노트북 장비를 욱여넣고 반납할 책 네 권을 챙겼습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도보로 10여 분, 지하철 이동 시간 18분, 그리고 내려서 다시 도서관까지 도보로 10여 분 가야 하는 길입니다. 결코 먼 거리는 아니나, 이미 도서관을 개관한 뒤이기에 1분 1초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10시 4분에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도착합니다. 출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저의 최종 목적지인 4층 인문자료실에 발을 들입니다. 오른쪽에 버티고 선 책장 사이로 노트북 자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눈으로 스캔하면 살펴보는 동안 총 열여섯 개의 자리 중에 빈자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책만 읽다 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좌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글을 써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때마침 발견한 딱 한 개의 빈자리. 마치 저를 위해 누군가가 비워 놓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10시 넘어 도착했을 때 노트북 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가동하기까지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가방에서 죄다 꺼내어 자리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일단 반납할 책을 오른쪽 구석에 놓습니다. 그러고는 노트북과 마우스 패드를 꺼내어 자리를 세팅하고 노트북 위치와 의자의 위치를 가운데 정렬하듯 줄을 맞춥니다. 패드 위에 마우스를 놓고, 노트북 전원 선을 연결합니다. 혹시라도 작은 소리라도 날 수 있는 관계로 만일을 대비해 이어폰을 본체에 꽂습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충전기를 연결합니다. 매번 자리를 옮길 때마다 반복해야 하는 귀찮은 작업이지만, 달리기 전에 운동화 끈을 동여매는 심정으로 엄숙하고 진지하게 수행합니다.


오늘도 한 번 더 느낍니다. 역시 사람은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 아침에도 그놈의 '10분만'의 마법에 굴복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 길게 자지 않고 그 시각에 깬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늘어지게 잤다면 오늘도 하루를 공으로 날리고 말았을 테니까요.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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