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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6. 2024

텅 빈 주머니

삼백 쉰한 번째 글: 남자가 돈도 없이 어딜 다녀?

하필이면 오늘 주머니에 돈이 딱 떨어졌습니다. 신용카드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가급적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적어도 어떤 지출에 대해 미리 아내와 협의가 된 부분만, 그중에서도 저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와 관련된 일에만 신용카드를 사용하겠다는 저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랄까요? 대략 하루 5000원 꼴로 계산해서 한 달 동안 용돈 아닌 용돈을 받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아실 겁니다. 용돈이 들어오는 날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솟고, 다 떨어져 가는 즈음엔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된다는 걸 말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오면서 무심코 휴대폰을 열었습니다. 가죽으로 된 케이스 안에 지갑 대용으로 쓰고 있는 공간을 살펴봤습니다. 3000원이 있었습니다. 순간 식은땀이 났습니다. 3000원으로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엔 청바지 주머니를 뒤집니다. 600원. 도합 3600원뿐이었습니다. 도서관에 입장하기 전에 2400원을 주고 레쓰비를 2개 삽니다. 글을 쓰면서 한 모금씩 홀짝 홀짝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작 1200원이 남았습니다. 밖으로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점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은 신용카드로 밥을 사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서관 문을 닫는 5시 이후에는 동네 집 앞 파스쿠찌에 가서 글을 쓸 예정인데, 어제 기프티 카드가 들어온 게 있어서 그걸 쓰면 됩니다. 남은 1200원으로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오늘 하루만 잘 버티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용돈을 받는 날이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격상 허영이 있다거나 허풍스러운 사람은 아닌데,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사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듭니다. 당장 어딜 나가고 싶은 용기도 생기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경우엔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듭니다. 제가 유독 심한 건가 싶었지만,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자기들도 그렇다는 얘기를 합니다. 반드시 제 삶이 혹은 제 행동이 타인들에게서 객관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나, 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놓이는 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저녁때쯤 31년 지기가 얼굴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 정도 사이라면 사정을 말하고 만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친해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연락이 온다면 만나야 할지 다음으로 미뤄야 할지 고민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단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글을 쓰고, 녀석과의 문제는 연락이 왔을 때 결정할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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