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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16. 2024

썸바디 데어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 June 2024

[떨림과 설렘]으로 쏘아 올린 유월 한 날, 흐렸다가 비가 듣는 듯하더니 이내 밝게 피어나 북토크를 빛냈다.




그녀의 그를 상상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가 찾는 '그'가 떨림으로 그리고 설렘으로 나타나기를 바랐다. 낯선 그녀가 왔다. 뽀글거리며 커지는 비눗방울처럼 기쁨과 흥분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는 하나씩 수줍게 꺼내 보여 주었다. 표정은 뜨거운데 마음은 수줍은 그녀를 대신해 내가 가만히 메아리를 울려 본다.


Somebody there,

나의 존재를 의미 있게 해 줄 당신이여, 

거기 계신가요?


사람들 속에서 떨림을 느낀다는 그녀, 사람과의 내밀한 교집합 속에서 설렘에 기뻤다는 그녀는 '그'를 찾고 있었다. 그녀가 희망하는 떨림의 의미를 알아채면서 그 한 편 조각이 내게 넘어왔다. 


무심한 듯 몇 마디 말에, 내가 기대했던 떨림을 품고 기다리던 날들이 설렘이 되었을 때, 그는 나의 사람이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받았던 건조하기 짝이 없었던 프러포즈가 현재로 넘어와 꿈꾸는 낭송 공작소 6장, 떨림과 설렘을 같이 읽는다. 북토크에 온 그녀가 그렇게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누구나 현재를 살고 있으나, 아무나 지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이미 휘발된 향수 같은 과거를 애써 맡으려 시간을 보내거나 살아있을 거라 함부로 예언하고 미래를 염려하느라 지금이 타들어 가는 줄 모른다 (p.128).

Somebody lives in the present, but nobody lives right now. They may not know that 'Right Now' is being scorched since they spend time sniffing the volatile fragrance of the past or feeling anxious about the future, daring to foretell that they could be alive.


유월의 굿즈, 명함 크기로 한 손에 쏙 잡히는, 세상을 담은 메시지를 다시 내 가슴에 꾹꾹 새겨 넣었다. 그중에서 이숲오 작가님께서 던진 'Somebody'라는 영어 단어가, 얕은 땅을 밟고 변두리에 서 있던 나를 깊은 숲 속의 공작소로 되돌아가게 했다. 수련이 필요하다.


의미 있는 한 생명체로써의 Somebody는 모든 사람의 열망이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찰나를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 의미의 거리와 단어의 온도 차이가 있다. 두 언어 사이에서 고뇌하는 습관은 북토크에도 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잡고 사는 한 단어 일지도 모르겠다. Somebody를 만나는 것, Somebody가 되는 것. 유일한 그와 그녀로 단 한순간의 찰나인 지금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그 '제대로'를 채우는 떨림과 설렘인 것이다.


각각 다른 방향에서 오는 책 속의 떨림과 설렘의 의미가, 하나의 관계 안에서 그 둘이 수렴할 수 있다는 깨달음, 지금까지 고착된 낡은 개념이 다른 방향으로 더 넓게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북토크가 주는 선물이다. 작가가 독자의 목소리를 허락하는 시간은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의식인 것 같다.





6월의 북토크는 한국어의 표준 발음과 맞춤법에 대한 주제가 문을 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중요한 단어의 의미, 원칙과 허용에 대한 동일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관형격 조사 '의'의 예를 이숲오 작가님께서 차분히 설명해 주셔서 세상의 새로운 현상에 대해 정치 사회적인 시각으로도 바라볼 수 있었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에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이 매번 일렁거리며 와서 안긴다.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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