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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5. 2024

사이버 머니

삼백 쉰 번째 글: 월급

한 직장 동료 선생님이 언젠가 월급날이라며 아침부터 들뜬 표정을 보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저는 벌써 월급날이구나, 하며 머릿속에서 어디에 얼마를 쓰고 나머지 돈으로는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늘 하곤 했던 일이었으니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은 데다, 일단은 통장에 잔고가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니 월급날엔 반드시 제가 해야 하는 일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계산기를 두드려댈 수는 없었지만, 한창 머릿속 계산기로 더하고 빼기를 반복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월급날이라며 얘기를 꺼냈던 선생님보다는 3년인가 경력이 많은 선생님 분이 무심한 듯한 어조로 한 마디 던졌습니다.

"에효. 그럼 뭐 해요? 나한테는 사이버 머니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학년 연구실에 모여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맞다, 맞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찰지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기가 차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올해 들어서 듣게 된 표현 중에서 가장 놀라운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현금으로는 교환이 불가능한 돈으로 사이버 상에서만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사이버 머니라고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그 선생님 말도 맞는 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쩌면 그 선생님은 현금의 형태로 인출해서 본인이 직접 만져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분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가는 돈이 도대체 얼마인지 모르겠어요."


네, 맞습니다. 내일은 저의 월급날입니다. 마찬가지로 제 월급의 지출 내역 중엔, 사이버 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뭐, 굳이 끼워 맞춘다면 휴대폰 요금이나 카드값 등도 그분이 말한 개념으로서의 사이버 머니에 해당할 것입니다. 꼭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배고파 뭐라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빵을 5개 주면서 선이자처럼 2~3개는 떼고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현명한 지출, 현명한 소비, 그리고 현명한 경제생활을 영위하려면 지금 말하고 있는 사이버 머니를 줄여야 테지만, 과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오래전에 생활비가 빠듯해 여유가 없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장모님이 한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신용카드? 내 때에는 그런 것 없어도 잘만 살았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살아온 세대였습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가족 구성원들을 거느려야 했고,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돈을 모으며 살아왔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넘쳐 나는 지금은 왜 그게 안 되느냐는 장모님의 말씀에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이버 머니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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