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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16. 2024

시선을 잡아끈 의자

#3.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무슨 요일인지도 또 언제쯤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도 최근 며칠 간과 똑같이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던 날이었습니다. 학교를 나섰으니 아마도 대략 5시 전후였을 것입니다. 한두 시간 안에 떨어질 것을 예감한 것인지 태양이라는 녀석은 사정없이 빛을 발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신호등 앞에 이르고 보니 막 신호가 바뀐 참이었습니다. 무리해서 뛰었으면 건너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 보면 길 중간에서 빨간불로 바뀌는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컸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학교 앞 횡단보도라면 지나다니는 그 많은 차량들 속에 반드시 학부모의 차가 끼어있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옆이나 뒤엔 아이들도 타고 있을 테고요. 명색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가 무단횡단했다는 오명을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앓느니 죽는다고, 이럴 때에는 차라리 다음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입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거의 4~50분에 대꼴로 오는 역으로 가는 버스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대개 그런 날은 이런 장면이 연출되곤 합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서 직선길로 접어듭니다. 제가 서 있는 횡단보도가 끝나는 반대편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30m 정도의 직선길을 한달음에 달려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합니다. 저는 무단횡단을 할 수 없어서 막상 그렇게 실행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30m를 달려 버스를 타려고 시도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거의 열의 아홉은 정류장에 기다리는 사람이 그 자리에 없으면 무조건 무정차로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달려오는 사람을 기다려 줄 버스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버스의 꽁무니라도 보이면 이미 탈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날은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직선길을 한참 내려가서 족히 10여 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선 버스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오늘은 무탈하게 타겠구나, 하며 마음을 놓고는 마냥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사진 속의 저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얼핏 보면 무슨 숲 속의 입구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은 버스정류장이 위치한 인도에 인접한 작은 풀숲입니다. 묘하게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이걸 시적이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니면 낭만적이라고 할까요? 마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습니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새로운 소설의 스토리가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2년 4개월째 같은 길을 매일처럼 다녔지만, 저에게 이런 진기한 풍경은 처음이었습니다. 똑같은 현상이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게 뭔가가 자극이 되고 저 단순한 풍광이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는 충분한 것이겠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그날은 버스가 지나가는 줄도 모른 채 넋을 놓고 저 의자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모든 건 첫인상에 달린 모양입니다. 그 이후 며칠 동안은 저 의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새롭게 구상하려는 소설의 스토리를 새록새록 머릿속에 그려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에 본 것만큼의 감흥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을 정도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해 준 저 의자를 누군가가 치웠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에도, 어디 갔을까, 하는 궁금증 외엔 더 이상의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처음 봤을 때 사진을 찍어둔 건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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