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n 18. 2024

내게도 있었던 동심

#4.

학교 뒤쪽에 산이 있습니다. 뭐, 딱히 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정도입니다. 얼추 높이는 100m쯤 될까요? 제가 서 있는 위치가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마치 두 개처럼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일부분 겹쳐 보입니다. 그 포개진 틈 사이로 둥그런 물체 하나가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색깔로 보나 모양새로 보나 아마 사진 속의 저 구체는 분명 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너무 유치한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아주 어렸을 때 달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코앞에서 달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손톱 만하게 보이는 저 달을 가까이 가기만 하면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날도 소동의 발단은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동네 친구 두 녀석과 달을 따러 가겠다고 거창한 꿈을 품은 채 집을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문단속 따위는 안 하던 시절이었고, 밥때를 넘겨서 동네에서 노는 아이가 있으면 내 집 아이, 네 집 아이 가리지 않고 거둬서 먹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연히 아이가 조금 늦게 들어와도 크게 걱정도 안 했던 때였습니다.


지금처럼 저녁이 되기 직전이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로 누구누구 집에서 노는가 보다 하며 마음을 놓고 있던 부모님들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아이를 찾아 나섰는데,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온데간데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실 유괴위험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 TV에서나 봤고, 우리처럼 그 더럽고 꾀죄죄한 아이들을 데려가봤자 별 쓰임새도 없었을 테니 유괴의 가능성조차 없던 때였습니다. 그나마 걱정을 약간이라도 덜게 된 건 세 아이가 동시에 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한참을 여기저기 다니던 부모님들은 그제야 동네의 다른 아이에게서 우리가 사라진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까 달 따러 간댔어요."


황당무계한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어쩌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같이 온갖 잡다한 것들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 비하면 무지 그 자체인 우리들이었으니, 달 따러 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한 것이겠습니다.


'아니, 이 녀석들이 도대체 이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왔지?'

시간이 꽤 지난 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찾은 부모님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던 기억도 났습니다.

"그때 너희들 한 30리는 걸었지, 아마."

초등학교도 안 간 녀석들이 온갖 이야기꽃을 피우며 족히 12km는 걸었다는 말은 저를 충분히 놀라게 할 만했습니다. 도보로 그 정도 거리를 이동하는 건 어른에게도 꽤 무리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어갔을까요? 아마도 혼자서 길을 나섰다면 결코 걸을 수 없을 거리였을 겁니다.


누군가는 다리를 아프다는 말을 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힘들다며 울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그게 저였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그날 그 조막만 한 세 녀석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그 먼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비록 달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몇 마리인지 자세히 보고 오자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또 노래로만 듣던 계수나무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해맑은 동심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날의 그 모험은 그저 하나의 소동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때 그렇게 당차게 집을 나섰던 그 순수함이 못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을 잡아끈 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