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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19. 2023

심폐소생술

열세 번째 글: 심정지 환자가 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인근 소방서에서 사람들이 왔다. 교직원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구급차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거나, 심정지에서 정상 호흡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될 환자를 생각하면 인간적인 도의로서 할 수만 있다면 그(그녀)를 도와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사실상 필요 없다. 만약 내가 길을 가다 그렇게 쓰러졌는데 아무도 내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아 내가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이것저것 재볼 것 없이 무턱대고 뛰어들어야 하는 게 옳은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심정지 환자가 남자이고 주변에 나밖에 없다면 시행하겠지만, 만약에 여자가 쓰러져 있다면 나는 그냥 갈 것 같다. 아니 그냥 갈 생각이다. 여기에서 예외는 딱 두 사람이다. 내 아내와 내 딸, 이들이 만약 심정지가 와 쓰러진다면 당연히 시행할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밝혔더니 사람들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면 과연 이 말을 들어도 내게 그렇게 물어볼 것인지 되묻고 싶다.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기분 좋게 모임을 갖고 새벽 1시쯤,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으로 나왔다가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는 여자를 봤다. 그 여자는 가로수에 기대어 세상 모르게 자고 있고, 그녀가 매고 있던 핸드백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상태였다. 사족인지 모르겠으나 꽤 젊은 여자였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친구와 나는 저대로 놔두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당해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10여 분 뒤 경찰이 와서 쓰러진 여자를 경찰차에 태우기에 우리는 본 그대로를 진술했다. 어떻게 그 여자를 보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신고를 하게 되었는지……. 경찰은 수첩 같은 데에 우리 얘기를 받아 적었다. 그러고는 경찰이 왔으니 우린 이만 가보겠다고 했다. 경찰은 잠시 있으라고 했다. 실은 경찰서로 가자는 말을 했다. 우린 바쁘다고 했다. 집에서 가족이 기다리니 가야 한다고 했다. 몇 가지만 확인해 보면 되니 같이 갈 수 없겠냐고 했고, 우린 뭘 확인하냐고 물었다.


대놓고 얘기하진 못하고 있었는데, 우린 그때 눈치를 챘다. 경찰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긴 했다. 목격자가 우리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싶었지만, 집에 가려는 우리를 자꾸만 붙들어 두려는 태도에서 우린 이미 기분이 상해 버렸다. 대로변에서 경찰과 대치 아닌 대치를 하는 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친구와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말을 했다.

"괜히 신고해서 이게 무슨 꼴이야?"

그 경찰은 마지막으로 우리 휴대폰 번호를 적어 갔다. 가기 전에도 함께 온 계급이 더 낮은 경찰에게 몇 가지 확인 질문을 했다. 핸드백에 물건이 없어진 것 같은 흔적은 없는지, 옷을 벗겼다가 다시 입힌 것 같은 흔적은 없는지……. 굳이 우리가 듣는 데서 부하 직원에게 확인하는 걸 보면서 우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었다. 뭐라고 대거리를 하려다 일단 나나 친구의 생각은 동일했다.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면 더는 대꾸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 뒤로 몇 번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었다. 실컷 수업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기도 했고, 퇴근 중일 때도 전화가 걸려 왔다. 확인할 게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여자가 깨어나고 보니 돈이 얼마 없어졌다고 하던데, 혹시 못 봤냐고도 했고, 심지어 정말 신고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까지 했다.

그 여자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경찰서로 인계한 우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 번 하지 않았었다. 과연 그런 경험을 해놓고도 우리가 의인이랍시고 남의 일에 나서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조금 전 교육에서 소방교가 그런 말을 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다 환자가 상해를 입으면 민사 및 형사상의 책임이 면책되지만, 만약 시행 중 사망에 이르게 되면 형사상 책임이 감면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감면'이다. 감면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망한 것에 대해 내려지는 처벌을 낮춰준다는 뜻이 된다. 그 말은 좋은 뜻으로 사람을 살리겠다고 뛰어들었다가 혹시 실수로(?) 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처벌은 받는다는 뜻이다. 그 소방교가 그랬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그렇습니다,라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형사상 책임을 감면해 준다는 말은 있지만 민사상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 말은 곧 민사적인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앞의 내 경험과 비추어 봤을 때 또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심정지 환자가 여자였을 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는데, 나중에 의식을 차린 여자가 시행한 사람을 강제추행으로 고소하는 경우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엔 이런 사례가 간혹 보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법정 공방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지만 그게 그냥 없었던 일이 되는 식이 아니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 소방교와 함께 왔던 여자 소방대원이 그런 말을 했다. 실제로 여자가 심정지로 쓰러졌을 때 브래지어를 잘라야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고, 심장제세동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판 남인 사람에게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의식을 차린 여자가 자기의 상의가 벗겨져 있고, 브래지어까지 잘려나간 상태인 데다, 나중에 들으니 왠 낯선 남성이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렸다고 했을 때, 과연 참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까?


내가 이런 상황을 가정했더니 사람이 너무 극단적이란 말을 했다.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그런 걸로 누가 강제추행으로 고소하느냐고 하지만, 별 것 아니었던 내 경험을 생각해 보면 정작 당사자였던 내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실제로 여성이 심폐소생술을 받을 확률이 남성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가정에서 지인에게 시행할 때는 별 차이가 없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모르는 여성에게 시행할 확률은 현격하게 낮아진다는 결과를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남성들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할까 봐 여성 대상으로는 심폐소생술을 주저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했다. 소수의 개념 없는 사람들이 고소 협박 등을 남발함으로써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다만 실제로는 국내에서 고소사례는 드물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공통 의견이라고 했다.


심폐소생술로  인한 강제추행은 아래와 같은 가능성이 모두 실현되어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참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상대방이 고소할 가능성   

     고소장을 경찰이 반려하지 않을 가능성   

     경찰에서 수사 개시를 할 가능성   

     경찰에서 수사 후 내사 종결하지 않을 가능성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 내리지 않고 기소할 가능성   

     법원에서 강제추행으로 판결할 가능성                          -> 출처: 다음, 나무위키, '심폐소생술'


사실 나는 법적인 보호의 테두리가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사람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 면책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또 시행 과정에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의 민사상 혹은 형사상 면책이 완벽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고 난 뒤에야 왜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지를 따지는 게, 어떻게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그냥 가만히 보고 있느냐고 따지는 게 순서라고 본다. 자기 가족이 아니라서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이 아니라서 내가 그 어떠한 책임도 질 수 없기에, 그러한 상황에 처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꼭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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