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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21. 2024

존경하는 소설가

147일 차.

얼마 전에 어느 선생님과 제가 나눈 대화를 옮겨 보겠습니다. 그때 저는 국내 소설을 읽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책 읽으세요?"

"이문열 씨가 쓴 '아가'입니다."

"소설 좋아하시나 봐요?"

"네, 시간 날 때 종종 읽곤 합니다."

차마 사실은 저도 소설을 씁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괜스레 도둑이 제 발 저렸다고나 할까요?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예요?"

"J.R.R. 톨킨, 마쓰모토 세이초, 마루야마 겐지,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입니다."

막상 시원하게 대답해 놓고는 아차 싶었습니다. 왜 죄다 일본 사람뿐이냐며 의아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빼고는 다 일본 사람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곧장 의문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나라 소설가는 좋아하는 사람 없으세요?"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까지는 두세 명 있지만, 존경하는 국내 소설가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으니 그냥 대답하면 그뿐입니다.

"음, 이문열, 고종석, 김형수......"

마치 없는데 억지로 쥐어짜 내 듯 몇 명의 이름을 말하며 둘러댑니다. 하필이면 존경하는 소설가가 모두 일본인이라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합니다. 왜 제가 존경하는 소설가는 모두 일본인밖에 없는지를 말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어딘가에서 누가 묻더라도 대답하기가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다 못해 넌 우리나라 사람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개인의 기호에도 애국심을 운운하는 게 마뜩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한 기자가 유명 바둑 기사에게 존경하는 기사가 누구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는 딱 두 명을 거론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가면 될 일인데, 우리나라 기사 중에선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네, 없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그는 사람들로부터 꽤 오래 비난 아닌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한 마디로 줄이자면 '네가 그렇게 잘 났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바둑 기사가 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명색이 존경한다는 말을 갖다 붙이려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최소한 본받고 싶은 구석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어디까지나 저라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 앞에서 열거한 세 소설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끼곤 합니다. 보다 더 솔직히 말하면, J.R.R. 톨킨. 마쓰모토 세이초, 마루야마 겐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은 읽을 때마다 설렘과 떨림을 느낍니다. 몇 번이나 읽은 뒤라 이미 스토리를 훤히 꿰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소설을 읽을 때 그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완독 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 안 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저만의 관점에서 보자면 존경할 만한 국내 소설가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문열, 고종석, 김형수 씨 정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요. 거만하다고, 혹은 재수 없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특성상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곧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기준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읽을 때 예술성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그건 제게 이미 예술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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