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Jun 22. 2024

흥이 다하면…….

148일 차.

문인 왕휘지가 한밤중에 잠에서 깼습니다. 갑자기 무슨 흥이 났는지 동해에서 배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친구의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그 길로 뱃머리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왕휘지를 보고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어째서 친구의 집 앞까지 가놓고서는 만나지도 않고 되돌아왔느냐고 말입니다. 왕휘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합니다.

"흥이 다하였으니 돌아온 것이라네."


중국 동진 때의 문인 왕휘지의 일화로 유명한 얘기입니다. 이 왕휘지는 당대의 최고의 명필로 손꼽히는 왕희지의 아들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가 보통 사람이 아니니 아들이라는 자도 일반적인 수준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런 비범한 사람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겠지만 이 일화를 대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친구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거기까지 배를 타고 왜 갔느냐고, 혹은 그 야밤에 배를 타고 갔으면 친구는 보고 와야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 말은 그의 행동은 다분히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그렇게 무리를 해서 움직였으면 최소한 그 보고 싶다던 친구의 얼굴 정도는 보고 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냥 그 길로 다시 배를 타고 와 버린 왕휘지에게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묻습니다. 그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흥이 다했으니 돌아온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대답치고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흥이 다했으니 그만둔다는 말이 말입니다. 사실 '흥'이라는 낱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지만, 내친김에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봤습니다.


흥: 재미나 즐거움이 일어나는 감정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재미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린 흥에 겹다 혹은 흥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히 흥미로움을 느낀다거나 또는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흥'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린 왕휘지가 말한 '흥이 다하였다'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흥이 다하였다,라는 말은 결국 흥미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즐겁거나 신명이 있는 상태에서 어떤 일을 준비하거나 시작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라고 해도, 즐겁거나 또는 신명이 있는 상태에서 하지 못하는 일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게 어떤 일이건 간에 마지못해 하는 일에는 진정성이 결여되기 마련이고, 그런 마음가짐이나 자세로 한다고 한들 긍정적이거나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 중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있고, 그것과는 관계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는 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자연적인 느낌에 따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늘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러했을 테지만, 한 가지의 일이 그런 식으로 자연도태되어 버리면 묘하게도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흥미를 잃었을 때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대체로 우리의 생계 즉 직장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들에 흥미를 잃게 된다면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론상으로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흥미를 잃으면 그 일을 그만두고 얼마든지 다른 일을 혹은 다른 직장을 물색해 보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져 가는 교직 환경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습니다. 어느새 24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곤 했던 시간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 보니 대략 10여 년이었습니다.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을 돈 지는 한참 오래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건 말건 간에 이 힘겨운 직장에서 그나마 25년째 하고 있고 이제 10년밖에 안 남았으니 그 자체로 어쩌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거꾸로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가령 1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고, 앞으로 24년의 세월이 남았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생각만으로도 앞이 캄캄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로봇이 아닌 한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흥은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흥이 다하면 그때부터는 기계적으로 혹은 무신경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흥이 언제까지고 제게 붙어 있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흥이 다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경하는 소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