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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25. 2024

내 오랜 지기

삼백 쉰여섯 번째 글: 친구의 생일

제겐 31년 된 친구가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같은 곳에 다녀 어린 시절을 공유한 관계는 아닙니다. 다 커서 친구가 된 사이였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많은 세월을 함께 한 것만 해도 신기할 뿐입니다.


녀석을 처음 만난 건 제가 교대 2학년 때입니다. 신입생과 재학생과의 대면식에서였지요. 그렇지 않아도 신입생 중에 나이 많은 후배가 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차였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다시 1년 간 공부해서 동기들보다 2년이나 늦게 들어와서 그 애환을 잘 아는지라 눈여겨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첫인상은 수더분한 편이었습니다. 보기보다 그리 까탈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또래에 비해 3년이나 늦게 들어왔다고 해서 나이를 무기로 삼는 녀석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과 저와 3학년의 한 선배와 조촐하게 술을 먹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한창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나이가 같았습니다. 형식이니 뭐니 따위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분위가 무르익어 가던 즈음 3학년 선배가 크게 인심을 썼습니다.


"셋이 나이도 같은데 무슨 선후배? 지금부터 우리 셋 다 말 놓고 친구로 지내자."

그날 이후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같이 간다는 맹세 아닌 맹세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보면 술이 부른 참사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도원결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배였던 그 친구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현직에 나간 지 4년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기 때문입니다.


한 놈은 가고 두 놈이 남아 술김에 한 약속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야 녀석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녀석은 제게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긴 제대로 본 모양입니다.


오늘따라 먼저 간 그 친구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한 번 더 만나 못하는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일은 남아 있는 녀석의 생일입니다.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까 물색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사이엔 낯 간지럽더군요. 그냥 저녁이나 한 그릇 사 줄까 싶어 오늘 저녁에 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오늘은 먼저 간 그 녀석 얘기로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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