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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2. 2024

장마가 시작되나 봅니다.

158일 차.

긴 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제는 제법 잠을 청했습니다. 약간의 피곤한 감은 남아 있습니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덤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온종일 잠에 들지 않는 한은 오늘 하루 바삐 움직이면서 풀어가야 할 문제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밝은 기운이 덜했습니다. 밝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빛이 방 안으로 쏟아집니다. 아침답지 않을 정도로 사위가 정적에 휩싸여 있습니다. 게다가 어젯밤의 그 찌는 듯한 더위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어느덧 귀에 익숙한 소음이 창밖에서 들려옵니다. 약간의 불쾌함까지 가미된 경쾌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비가 온다면 싫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며 짜증을 부릴 수 있는 수준도 아닙니다. 이 무지막지한 비가 하루 동안 더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얼른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합니다. 현재 시각 5시 50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방 안에서 내다본 비와 밖에서 맞닥뜨린 비의 양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잠시 우산을 옆으로 비껴 들고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분명 어딘가에 뚫려있는 구멍을 찾아볼까 싶었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슬슬 바짓단가랑이가 비에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군데군데 고이는 작은 물도랑을 요리조리 재주껏 피해 다녀 봐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바지가 정강이에 들러붙는 느낌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그리 해서인지 다리가 무거워집니다.


보기만 해도 참 시원하게 쏟아붓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저주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입니다. 그래도 이미 내리고 있는 걸 어쩌겠습니까? 더군다나 내리는 모양새로 봤을 때 어지간해서는 금세 그칠 비로는 안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 실컷 쏟아부어 봐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아침은 마음을 좀 크게 써 보려 합니다. 이러다가 또 눅눅해져 체감상 더위가 시작될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해서 기분이 처져 있으면 저만 손해니까요.


이 비에도 아랑곳없이 기차는 달려갑니다. 차창밖 표면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이 사선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철교를 지나는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세상 모든 게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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