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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7. 2024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나요?

163일 차.

나른한 오후입니다. 아닙니다. 벌써 저녁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를 슬슬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입니다. 으레 이럴 때면 이런 생각에 빠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막상 써놓고 보니 가슴 한편이 찔리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한 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귀한 휴일의 오후를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두어 시간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팔을 베개 삼아 뒤통수에 받쳐놓고는 그렇게 천장만 쳐다보며 빈둥거렸습니다. 아마도 온갖 잡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을 것입니다. 그 생각들 중에선 제법 생산적인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 더러는 쓸데없는 것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마냥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초를 쪼개가며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이라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자유도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빈둥거리는 것이 반드시 한심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선 곤란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 역시 하나의 재충전의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빈둥거림이 길어지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다행히 그 빈둥거림 속에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습니다. 후다닥 일어나 이렇게 집 앞의 파스쿠찌에 와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뭘 그리 대단한 글이라고 글을 쓴다는 표현을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그러건 말건 간에 저는 글을 쓰고 있고 그들은 글을 쓰지 않는다면, 적어도 글쓰기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충고나 조언은 제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 한 잔을 가끔씩 한 모금씩 들이켜가며 글을 쓰는 지금이 싫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과연 제가 글을 쓰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인지, 아니면 바닐라 라떼를 마시기 위해서 온 것인지를 말입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습니까? 설령 글쓰기가 목적이 아니라 바닐라 라떼가 목적이었다고 한들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늘 그랬듯 1층 매장에는 제가 좋아하는 점원과 저 둘 뿐입니다. 물론 이 '좋아하는'이라는 말에는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단지 이왕이면 다른 점원이 있는 것보다는 저분이 있는 것이 더 좋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항상 올 때마다 반갑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친절하게 주문을 받습니다. 음료가 준비되면 저에게 필요한 냅킨과 빨대를 챙겨줍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점원과 개인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눠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점원으로서 저는 손님으로서 그렇게 마주 대할 뿐입니다. 어쨌건 간에 이런 그녀의 모습이 그 많은 점원들 중에서 저분이 있을 때 제가 이곳에 오는 이유가 됩니다.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생각해 봅니다. 제가 오늘 하루 뭘 했는지를 말입니다. 특별히 뭔가를 기억은 없습니다. 물론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휴일이니 있다면 그뿐인 것입니다.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우선이겠습니다만, 어쩌면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지금으로선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이렇게 글을 쓰며 있다는 제게 더없이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온 셈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저는 행복한 휴일의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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