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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22. 2023

노 시니어 존

열여섯 번째 글: 나는 노 시니어 존을 지지한다.

노 키즈 존, 즉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특정한 장소에 입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사회의 이슈가 되어 왔다. 엄밀하게 말해서 편견을 조장하고 불평등한 처우라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용납이 안 된다는 듯 얘기를 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오죽했으면 저런 현상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되는 측면 또한 꽤 큰 게 사실이다.

뭐든 한 가지가 나오고 나면 이와 비슷한 것들이 쏟아지기 마련, 얼마 가지 않아 노 시니어 존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노 시니어 존은 말 그대로 나이가 든 사람은 입장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을 통제하더니 이젠 노인에게 차례가 돌아갔다.

꼭 특정한 나이를 두고 시니어에 해당된다 혹은 해당되지 않는다를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직장 동료 중 갓 발령받은 새내기 교사가 보면 24년 차인 나 역시도 시니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오늘 1주일 만에 집 앞에 있는 파스구치에 나왔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노트북을 켰다.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보면, 사진이 찍혀 있지 않은 좌측의 자리에서 소란스러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자 세 명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경우가 없나 싶어 슬쩍 봤더니 공교롭게도 그들 중 한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그는 한때 지역 교육지원청에 근무한 적이 있었던 기능직 직원이었다. 내가 그를 알고 있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그의 부인이 꽤 오래전에 나와 함께 근무했었고 게다가 친분까지 있었던 보건교사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그들이 어지간히 소란을 피워도 항의하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 그는 시니어 코앞에까지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장 내에서 그의 행동은 거칠 것이 없다. 큰 소리로 대화하기, 대화 도중에 전화가 걸려 오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조용하게 각자의 볼일을 보며 차를 마시고 있던 젊은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모처럼 쉬기 위해 커피 전문 매장에 온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무례한 행동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얼마 전 어떤 카페의 여사장이 '60세 이상 출입 금지'라는 표현을 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정치 얘기, 타인을 훈계하는 듯한 말투, 성희롱적 언행이나 미묘한 행동 등을 내가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저런 인간들처럼 경우 없이 행동한다면,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기만을 생각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인간들이라면, 입장을 제지하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조치가 아닐까?


나는 노 시니어 존을 지지한다. 사회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연령 경계선에 몇 년 후면 도달하게 될 내 입장에서도 그다지 유쾌한 현상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시니어들이 공적인 장소에 입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피해를 주고 있다면 나는 시니어의 입장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느 정도의 상식을 갖추는 날까지 혹은 인간으로서의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의 태도를 갖추게 되는 날까지 그들에게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설령 이 때문에 내가 어딘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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