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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2. 2023

출간 허니문 III

0405

1차 원고 수정 : 2023년 5월 1일~7일
2차 원고 수정 : 2023년 6월 13일~18일
최종 점검 : 2023년 7월 7일~9일

틀린 글자는 볼 때마다 매번 숨었다 등장해서 저자를 당혹하게 했다.

단순 오타보다 몰랐던 표준어를 알게 된 것은 스스로의 국어실력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 수정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다.

예를 들어, '오라'가 '아우라'의 표준어임을 편집자의 수정보고서를 통해 알게 되었으나, 포승줄로 오독할 가능성이 있어 원어를 병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퇴고를 오타 수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소모적인 행위에 그친다는 걸 하면서 알게 되었다.

퇴고는 '퇴' 자로 쓰느냐 '고' 자로 쓰느냐의 문제에만 있지 않았다.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나 비문은 걷어내야 했고 흐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통째로 덜어냈다.

새로 작성한 문장은 기존의 결에 잘 부합되도록 톤을 조절해야 했고 리듬을 고려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읽는 것은 같은 식단으로 매 끼니를 먹는 것과 같았다.

이 과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바깥 음식과 같은 글이라면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입에 물릴 것이었다.

내 글이 집밥과 같이 조미료같은 기교를 절제한 글인지를 이 과정에서 증명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글의 생기를 살폈다.

책의 숙명은 과거에 쓰여 현재에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현재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단순히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를 현재형으로 고쳐 쓰는 것에서 해소되는 건 아닐 것이다.

퇴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점검한 부분은 이 지점이다.

박제된 글이냐
신선한 글이냐
 

다행히 내 원고는 퇴고과정에서 질리지 않았고 현재의 유효한 질문들을 여전히 던지고 있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면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는 말은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책은 처음 읽을 때 보이는 사물과 두 번 세 번 읽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건축물보다는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책은 아름다워지고 독자가 친숙해진다고 본다.

이렇게 중요하구나! 퇴고 과정이여!

글 쓰는 과정보다 신중하고 집중한 시간이었다.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097...

오늘은 원주율 근삿값의 날이다.

글쓰기가 파이는 아닐까

무한정 반복되는 숫자에 어떤 패턴도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글쓰기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도 유사반복과 마침은 없다.

비슷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글쓰기의 나날들!

그러나 어떤 날의 글쓰기도 그날만의 얼굴을 가진다.

놓치고 나면 유일한 하루의 글쓰기는 다시 마주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하루도 거를 수 없다.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조금 준비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지금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이렇게 내 앞에 떡 하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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