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필이면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왜 글을 쓰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재미있는 걸로 따지면 글 쓰는 것이 가장 재미없는 일에 속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어느 누구도 내게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반드시 써야 하는 이유 또한 없다. 누군가가 내게 원고를 의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마감에 시달리는 작가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글을 쓰고 있을까? 왜 아무도 시킨 적 없는 일에 혼자 마치 강박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글을 쓰고 있을까?
요즘 들어 부쩍 글을 많이 쓰고 있다. 매일 하루에 쓰는 양이 A4 용지로 환산했을 때 5장이니, 7월 들어 벌써 100장 넘게 글을 썼다. 100장이면 거의 장편소설 1편에 육박하는 양이다. 끼니 때가 되면 자동으로 식탁에 앉아 뭐라도 챙겨 먹듯 눈만 뜨면 글을 쓴다. 솔직히 약간은 우스운 생각도 든다. 내가 뭐라고…….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일찍 시작했다면 뭐 하나라도 이루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 시작하지 않아서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고,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러고 있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한 번 물어본다. 왜 글을 쓰냐고. 간혹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어차피 깊이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왕 쓰기 시작했다면,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쓰고 있다면, 글을 쓰는 이유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쓰는 게 내겐 이득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내게 물어온다면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어쩌면 상대방은 내게 글을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가 답변할 때마다 고작 그런 이유뿐이냐 하는 눈치다.
누군가가 그랬다. 좋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맞다. 나는 이렇다 할 이유는 없어도 글이 좋아서 쓴다.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요즘과 같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돈이 하나도 안 드는 취미에서부터 꽤 많이 드는 것까지, 심지어 어떤 것들은 특별한 장소에 가야 하거나 혹은 고가의 장비가 있어야 가능한 활동도 있다. 그 수많은 취미 활동 중에서도 글쓰기는 내게 단연 으뜸이다. 비용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이와 펜 혹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다만 흠이 있다면 속성상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겠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테지만, 난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럼 넌 글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냐고,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한 발짝 물러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모든 취미 활동이 그럴 테다.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하고 소질도 있어야 하는 맛이 난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물론 잘하고 소질이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잘해야만 혹은 소질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정도의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글이 잘 풀리든 막히든 버티고 앉아 무엇이라도 쓰면 된다.시간이 날 때 할 만한 것을 떠올려 보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것 중에서 글쓰기라는 이 지난하고 더러는 고통스러운 활동을 부여잡고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쉽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더 즐겁고 자극적인 게 즐비한 세상에서 글쓰기가 가장 낫다는, 가장 좋은 활동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하단 뜻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글을 쓴다. 얼마나 만족하느냐고 묻진 마시기 바란다. 글쓰기에 만족이란 없다. 대체로 내가 써놓은 글을 보면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지만, 불만족스럽다는 데에서 생각이 멈추면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그냥 닥치고 쓸 뿐이다. 그렇게 써서 뭐 할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대답할 이유를 못 느낀다. 그건 어쩌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뭐 할 거냐는 질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