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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0. 2024

마누라 말, 떡

삼백 예순여섯 번째 글: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저는 아내의 말을 비교적 잘 듣는 편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간혹 거스를 때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23년이란 시간을 살아 보니 알겠더군요. 아내와 저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릴 때 대체로 아내의 생각이 옳더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시쳇말로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대개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말하는 이타성은 문자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판단이 결여된, 다소는 책임가미 옅은 데서 오는 오해이기 마련입니다. 남편은 결코 이타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일종의 우유부단함에서 그렇게 비칠 뿐입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아내들은 이기적입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닙니다. 냉정하고 정확한 현실 판단을 바탕으로, 그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걸 뽑아내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당연히 타인에겐 그저 이기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령 어느 정도는 그게 이기적이더라도 결코 나쁘게 작용할 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에겐 가장 탁월한 결정이기 마련이니까요.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아내에게 좋은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남편에게도 최상의 결정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이런 아내의 마음이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많은 부부들 사이에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가곤 합니다.


아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 알겠지?
남편: 에이, 사람이 어찌 그리 매정하게 그럴 수가 있어? 몰라. 난 도저히 못 해.
아내: 왜 못 해. 이게 다 당신을 위하고 나를 위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이때 남편은 아내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온 '내 마누라'가 맞나 싶기 때문이겠습니다.


흔히 돈을 빌려주고 떼이는 남편은 부지기수라도,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남편과 똑같은 결과를 얻는 아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조금 전에폭우로 인해 대구로 가는 모든 기차 편이 운행 중지되었다고 아내에게 연락했습니다. 정 안 되면 저는 버스라도 타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몇 번 갈아타는 일이 있더라도, 다소 늦게 되더라도 귀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지 말고 거기서 자라.


가타부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일방적인 통보나 선언처럼 아내가 보낸 톡이 비스듬히 날아와 제 뇌리에 꽂힙니다. 평소 같았다면 지체 없이 아내의 말을 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를 흠뻑 맞은 데다, 발까지 젖고 말아 도저히 밖에서 잘 형편이 안 됩니다. 자다가도 나오는 그 떡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저는 5분 뒤에 올 대구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내일 아침 왜관행 기차는 정상적으로 운행한다고 검색은 됩니다만, 지금 같은 날씨라면 내일의 상황을 단정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만약 내일 아침 기차 상황이 오늘처럼 또 그렇게 된다면 분명히 한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바라. 내가 머라 카더노? 거서 자라 캤나 안 캤나? 갠히 와가꼬 이 난리고!


잘 듣기만 하면 자다가도 나오는 떡을 거부한 대가일 것입니다. 부디 내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버스가 들어오는 방향만 하염없이 보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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