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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l 11. 2024

컬러풀 데이

데칼코마니

잠을 설치고 나면 흐린 연두색의 풋내가 난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머릿속이 답답하니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의 몽롱함, 훅훅 흔들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세시 반, 세상이 덜 깨어 움직임이 거의 없을 때 어두운 거실을 지나 진한 갈색의 커피를 만들었다.


흐린 연두색

몽롱한 회색

진한 갈색


이제는 눈앞에 바위처럼 희뿌옇게 버티고 앉아 내 목을 메이게 하는 아침 달걀 세 알, 앞으로는 두 알씩 쪼개 먹을까 고민이 크다.


좋아하는 것도 고정된 규칙이 되니 슬슬 외면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다. 하루가 꽉 막히는 느낌의 아침 식사를 어떻게 더 상큼하게 밖꿀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여전히 채도가 낮은 오전은 잠시 나온 햇살 뭉텅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저 한가락 한가락의 빛마다 조금은 더 명랑한 색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얹어둔다. 여러 날의 빗속에 오랜만인 해를 마주하며 조금씩 밝게 살아야지 다짐한다.


뿌옇게 흰색

밝은 햇살의 색

투명한 비의 색


쉬는 시간이 무조건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 쉼의 자세가 진지해야 하고 쉼에 대한 태도가 여유로워야 한다. 널브러져 누워있다고 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새벽 무채색의 피곤함을 뒤로하고 차키를 챙겼다. 만나는 휴식마다 글을 쓰며 무의식에 커피를 홀짝거리는 자유는 나를 진지하게 하는 쉼이며 여유이다.


눈 아프게 피곤하면 그늘에 숨어들어 입술 숨을 쉬며 풀풀 거리며 자면 된다. 그래도 되는 하루가 일주일 어느 평일이 된다는 건 행 일이다.


너무 많이 마신 커피 때문에 심장이 붉게 쿵쿵거리면 예쁜 무늬의 카페를 쳐다보기만 해야 할 때도 있다. 아쉬움에 한 번쯤은 망설이기도 한다. 심장이 터지기야 하겠어? 그냥 한잔 더?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살펴보고 고민하며 분류해 둔다. 필요한 연락을 해두고 답신을 기다리는 두근거림은 핑크빛으로 마음을 깨운다. 어쩌면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들이 빠글한 어둠에서 나를 노려보지만 인생이 그런 거다 이내 다독인다.

 

흥분한 심장의 붉은색

두근거리는 마음의 핑크

좋지 않은 가능성의 진회색


오늘도 이런저런 명쾌하지 않은 경계의 색깔로 채워지려나 하다가 갑작스러운 경이를 만나곤 한다.


글을 쓰고 우연히 찍은 햇살을 올리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무지개 조각들이 춤을 춘다.


오, 당황의 뜨거운 빨강으로 시작해 신비로운 여운의 보라로 끝나는 선물 같은 날, 그런 날을 상상하는 건, 그런 날을 마주한다는 건 나를 온전히 가진다는 거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를 타고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 속으로 무작정 들어가는 모험이 되었다. 손을 뻗는다.

 

햇살 속 무지개들이 나를 살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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