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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1. 2024

빚 권하는 사회

167일 차. 빚도 재산이자 능력

방금 전 기차 정기통근권을 끊으려고 코레일 앱에 접속해서 결제하던 중에 이용한도초과라는 이유로 승인이 거부되었습니다. 별로 쓰는 곳도 없는데 왜 한도가 초과되었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최근에 시술한 임플란트가 원인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아마도 카드를 받았던 초기 설정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을 테니 어쩌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습니다. 필요할 때 이런 오류메시지가 뜨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내의 카드를, 아내는 저의 카드를 쓰다 보니 여러 가지 조회를 하거나 정보를 변경할 때 반드시 아내의 폰으로 인증번호를 보내야 니다. 그 번호를 다시 카드 앱 상에 입력하려면 이 바쁜 아침에 전화를 걸어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영 마뜩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화를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까 싶어 살펴봤더니 등록된 카드 정보를 입력해서 한도를 늘이는 방법이 있더군요. 아마 1분 정도 걸렸을 겁니다. 아내의 폰에 인증번호를 보내지 않고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게 따지고 보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닌데 문제가 해결되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카드이용한도를 1.75배나 상향 조정했습니다.


문득 그때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어느 입주민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당황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두 여자분이 한 말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셈인데, 내용을 대략 옮기면 이렇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를 하려고 알아봤더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안 그래도 요즘 만만찮게 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야."

"무슨 걱정이야? 하면 되지."

"무슨 돈으로?"

"대출 놔뒀다가 뭐 할래?"

"나보고 대출받으라고?"

"그래, 요즘 자기 돈으로 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빚까지 져가면서 그래야 하나 싶어서 말이야."

"왜 그래? 요즘은 빚도 재산이고 능력이야."

갓 마흔 되었을까 싶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며 발길을 돌렸지만, 그 말은 내내 이명으로 남았습니다.


하긴 친구가 급한 돈이 필요해서 은행에 가 몇 천만 원 대출을 알아봤더니 두말 않고 대출해 주더라는 얘길 했습니다. 연봉도 어느 정도 되고, 신용도도 좋아 대출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꽤 그럴싸합니다만, 신용도가 하락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한순간입니다.

 

소설가 현진건 선생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빚 권하는 사회'입니다. 빚 권하는 대한민국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대출 적합 대상자로 판명이 된다면 그게 얼마든 빚을 내는 건 쉽지만, 갚기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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