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인 중에 글을 쓰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틈만 나면 글을 쓰는 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글 실력이라는 게 눈에 확 와닿을 만큼 느는 것도 아닌 데다, 마냥 글만 쓰고 있으려니 과연 지금 잘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제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오래전에 아마도 저는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비로소 문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을 겁니다. 갓 문자를 배워 고작 단어 몇 개 정도를 입으로 읊조리던 그 시기에 글을 쓴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니까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글을 쓴다는 활동은 최소한 읽기 작업이 선행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가만히 있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도 한 번 글을 써 볼까' 하며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법은 없습니다. 그건 그 어떤 대작가 혹은 대문호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즉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과정을 거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했던, '읽기'의 과정을 거친 뒤에 가능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따위를 따지는 일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은 대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마련입니다. 과연 그런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단연코 저는 지금까지 글을 쓰는데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책을 처음 접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책에 대한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더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책 속에서 뭔가를 건져 올립니다. 그들은 독서라는 '취미'를 갖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 준 책이나 혹은 자신의 안목으로 어떤 책을 선택하여 꾸준히 책을 읽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나도 한 번 글을 써 볼까?'
사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가 바로 단추를 잘못 끼운 시작점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온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입니다. 애써 써 놓은 자신의 글에 사람들이 무반응으로 일관할 때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쓰기 전에는 일필휘지로 잘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 꼴이 말이 아닙니다. 과연 '나'에게 글을 쓰는 재능이 있는지 하는 원초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어떤 노력을 쏟아부으면 그에 상당하는 결과물을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글쓰기라는 것은 꽤 비생산적인 짓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고작 이런 게 글쓰기라면 다시는 안 해야지, 하며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물론 이런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그리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분의 고민을 들으면서 저 또한 저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습니다.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느냐고 말입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단행본 출간이라거나 혹은 등단 등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저 같은 작가지망생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그만큼 더 절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은 경우라면 그 정도는 더 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차분히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니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닥치고 글을 쓰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