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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9. 2024

불현듯 한 마디가 떠오르면

저는 글을 쓸 때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지금처럼 '불현듯 한 마디가 떠오르면'이라는 구절이 머리를 스쳐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이 어디든 언제든 간에 스마트폰을 펼칩니다. 브런치스토리 앱에 접속해서 일단 생각난 것부터 처넣습니다.


불현듯 한 마디가 떠오르면


방금 전에 떠오른 그 말이 제목이 될 때도 있고, 때로는 글의 서두를 여는 첫머리일 수도 있습니다. 글의 꼴이 어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거창하게 시작하고 보니, 무슨 장난처럼 그 외엔 어떤 것도 머릿속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저는 글을 쓰겠다는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 버립니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지금 별달리 쓸 게 없다는 걸 인정하고 폰을 닫으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최소한 저와 반드시 약속한 게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앱에 일단 접속하면 반드시 뭐라도 쓰자. 그게 글 같든 아니든......


그렇게 하다 보니 기어이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은 어떻게든 망망대해를 표류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뭐, 꼭 육지에 닿아야 제 맛은 아닌 겁니다. 한참을 표류하고 표류하다 끝내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지간해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끝맺고 발행을 해야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혹은 다른 일에 전념하는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저의 글쓰기는 얼개 짜기나 구상 단계를 가뿐히 건너뜁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것도 잘하지 못할뿐더러 틀에 박힌 구상을 따라 글을 쓰는 것도 제 취향에는 맞지 않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떠오르는 대로 써보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간에 글이라는 게 많이 써야 느는 건 분명할 테니까요.


저는 글쓰기의 전형적인 틀이 1+1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1+1+1이 될 것이고,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가면 1+1+1+1이 됩니다. 즉 글쓰기는, 아니  글쓰기는 바로  1+1±1+...+1에 다름 아닙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만 하나 간신히 뽑아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뒤에, 또 그 뒤에 뒤에 새로운 문장을 하나하나 갖다 붙입니다.


불현듯 한 마디가 떠오르는 바람에, 문장에 문장을 더하다 기어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떤 형태의, 그리고 어떤 내용의 글이 되는지도 모르는 채 쓰다 보니 이제 발행할 시점에 온 것입니다. 때로는 글을 쓸 때 답답할 때도 있지만, 마치 꽁꽁 싸맨 선물 꾸러미를 풀어 헤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리 싫진 않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글쓰기 방식에 따라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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