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지상주의
삼백 일흔여덟 번째 글: 억울하면 1등 해.
내일 파리올림픽이 개막합니다. 사실 올림픽에 대해선 그다지 깊은 관심은 없습니다. 예상되는 매달 숫자라거나 우리나라가 목표로 하는 최종 순위 등에도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장면은 꽤 익숙하게 봐 온 것입니다. 올림픽을 마치고 선수단이 속속 귀국합니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목에 건 채 공항 로비에 서서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 세례를 받는가 하면, 어떤 선수는 처음부터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기라도 한 듯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메달이라도 땄다면 모를까, 예선전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열광하는 세태 탓입니다. 과정을 보려면 한 사람의 생애 전반을 들여다보아야 가능할 테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감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과 지향주의, 그리고 1등 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세상입니다.
메달을 목에 건 사람들은 당연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합니다만, 이런 순간에 저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선수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한참 전부터 요리조리 더위를 피해 가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앉아서 글을 쓰다가도 어느새 졸음이 밀려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글을 쓰는 내내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 메시지가 날아옵니다. 다른 작가님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면 가서 읽고 라이킷을 누르면 됩니다. 또 제 글을 읽은 어떤 작가님이 흔적을 남기셨다면 얼마든지 반가워할 만한 것이겠지만, 오늘은 무슨 조화인지 '릴레이 북토크'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계속 날아옵니다. 이러다가는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한 모든 분들의 인원수만큼 날아올 기세입니다.
뭐, 그다지 불쾌한 소식은 아니라고 해도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자꾸 똑같은 메시지가 오니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절망적인 건 내년 이맘때에도 사람만 바뀌고 내용은 같은 수 차례의 메시지에 시달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최근에 6학년의 한 아이가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사회가 싫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1. 우리나라에 안 살면 된다.
2. 네가 1등을 하면 된다.
공모전에서 밀려난 여운이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좀 잊고 차분하게 글을 쓰고 싶어도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이 달갑지 않은 소식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제가 그 아이에게 들려줬던 대답을, 이젠 저에게 할 차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하면 1등 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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