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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27. 2024

센스 넘치는 말 한마디

#15.

저희 집 앞에는 삼거리가 있고, 그 길목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신호등을 건너면 제가 틈만 나면 가는 파스쿠찌가 있고, 그 파스쿠찌에 가기 10미터 전쯤에 작은 과일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원래 이 가게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던 남자 주인의 태도가 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곳으로 유명했던 곳이었습니다.


가게 문 바로 앞이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였는데, 물건이 들어오는 날이면 그 횡단보도에 버젓이 상자를 재어 놓는가 하면, 장사를 한다는 사람이 고객들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누가 오건 말건 간에 늘 담배에 불을 붙인 채 입에 물고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라 주변 사람들의 원성도 있었고요.


그러던 그 가게에 드디어 주인이 바뀌는 날이 왔습니다. 집 근처 가게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제 삶에 무슨 변화를 가져올까 싶었지만, 요즘은 그 가게를 볼 때마다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 가게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인사를 건네지만, 기껏해야 아내 심부름으로 두세 번 가본 게 다인 그 가게의 주인이 제 얼굴을 알 리도 없을 텐데, 지나가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는 말입니다. 그렇게 수없이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주인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걸 본 적도 없고, 그 가게에도 물건이 들어올 텐데, 그 많은 물건을 횡단보도에 적재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밤 몸살 기운에 오후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파스쿠찌에 잠시 가서 글 몇 편을 쓰고 돌아오는 길에, 제가 말한 바로 그 가게 출입문에 붙은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려 11일간의 휴가라 이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불편함이 있겠지만, 저 짧은 인사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참 마음이 넓은 사람이구나, 센스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참 센스가 넘치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연 이 '센스'라는 말을 어떤 우리말로 대체해야 할까 싶네요. 사전을 찾아보니 '센스'가 일에 대한 감각이나 분별력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엔 '감각'으로 대체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분별력'을 슬쩍 끼워 넣으려고 해도 별로인 듯 생각됩니다.


주인이 무더위를 함께 데리고 멀리 갔다가 그곳에 무더위만 쏙 남겨놓은 채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멱살을 잡고라도 가을을 끌고 오겠다는 센스 넘치는 주인의 말에 잠시 동안이나마 무더위가 달아나는 듯했습니다.


말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와 '어'가 다르다고 하는 게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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