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점은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대략 마흔을 갓 넘었던 때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출근을 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려 11년 이상 접촉사고 한 번 없이 운전을 해왔던 제가 말입니다.도저히 직접 운전해서 출근하기가 싫더군요. 바로 집으로 다시 돌아가 차 키를 반납했습니다. 그러고는 인근에 살던 어떤 선생님에게 하루만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전 지금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통근하고 있습니다. 얼추 12년은 족히 그렇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불편하지 않냐고요? 크게 불편한 건 없습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하고 있으니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일단 가장 좋고, 통근 시간을 이용해서 글을 쓸 수 있으니 그건 애초에 계획에는 없던 덤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인 볼 일을 볼 때에도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교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무조건 일정한 거리만큼은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를 줄이려면 택시를 타는 방법 외에는 없는데, 다른 건 몰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최대의 적은 택시 이용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교통비에 드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택시를 몇 번만 이용하면 시쳇말로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마니까요.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무조건 걸어 다닙니다. 1~2km 정도는 우습게 걸어 다닐 정도니까요.
평소에는 이렇게 걸어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시간은 더 소모되겠지만, 좋게 생각하면 운동도 되고 걸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생각들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거부감이 없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지금의 이 날씨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어딜 가도 태양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서 땀이 물처럼 흘러내리는데 몇 백 미터씩 걸어 다니는 게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닙니다.
요즘 들어 특히 걸어 다니는 게 참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걷는 도중엔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문제는 걷다가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릴 때입니다. 교차로에서 최소 2~3분의 시간을 서 있다는 게 왜 그렇게도 힘이 들까요?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땡볕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분들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기라도 하듯, 어쩌면 제가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럴 때에는 바로 차를 타고 퇴근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같이 타고 가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기도 합니다만, 그것 역시 한두 번 그러다 보면 자꾸 타인에게 기대는 습성이 길러지는 관계로 '절대 태워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를 저의 일종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늘도 공공도서관을 오가며 걸어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쌩쌩해서 걸어 다니는 데 별 문제가 없는데,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걸어 다닐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만약 살아만 있다면 30년 후에도 걸어 다닐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미 이렇게 지구가 데워졌다면 웬만해서는 기온이 내려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걸어 다니는 것도 문제겠지만, 당연히 올해보다도 더 더울 내년이 벌써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