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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29. 2024

죽이는 날씨

삼백 여든 번째 글: 사람 잡는 날씨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더울 거라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낮 최고 기온 36도라고 합니다. 사실 36도라고 하든 37도든 거기서 거기 같게 느껴집니다. 더운 것은 매 한가지니까요. 낮 최고기온 35도가 이틀만 이어지거나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 또는 폭염 장기화 등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 발생이 예상될 폭염경보가 발령된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경보가 아니라 경보 할아버지쯤은 발령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흔한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다니는 중입니다. 체질 탓인지 뭐라도 하나 바르기만 하면 금방 땀범벅이 되곤 합니다. 안 그래도 더운데 그 끈적한 채로 온종일을 돌아다닐 자신이 없어 바르지 않는데, 이 정도라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내는 늘 좀 바르고 다니라며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바르면 덜 탄다는 걸 모르진 않으나 막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탔으면 최근엔 스리랑카 현지인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입니다. 스리랑카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왜관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정류장은 버스도착정보를 알려주는 기기가 없어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 곳입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저 아래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며 들어오는 버스가 있는지만 목을 빼고 기다립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지쳐갑니다. 잠시라도 앉을까 싶어 정류소 안에 비치된 의자에 앉으니 엉덩이가 익을 것 같습니다. 가슴에도, 등에도, 그리고 팔뚝에도 인정사정없이 태양이 내리 꽂힙니다. 오늘이 7월 29일, 아직 한 달 반은 더 족히 이럴 거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할 지경입니다.


때마침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분이 이 무지막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긴 바지와 긴 팔 옷을 입고 씩씩하게 지나갑니다. 게다가 모자를 쓴 데다 눈만 빼놓고 모두 가려지는 특수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위태롭습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어디 볼 일을 보러 나온 게 아니라 운동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살이 쭉쭉 빠질 것 같습니다. 살인적인 땡볕을 어찌 견디며 걷고 있는지 그저 대단하단 말밖에 생각나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말 좀 뭣하지만 아마 저분이 집에 가서 입었던 옷을 벗어서 쥐어짜면 양동이의 물은 나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분이나 저나 따지고 보면 똑같이 걷는 것이지만, 그 걸음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 폭염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에이, 뭐 까짓것 별 게 있을까 하며 저 역시 당당히 어깨를 펴봅니다. 노출되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많은 빛을 받을 거라는 어설픈 상식이 발동합니다. 그분처럼 하려면 어지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이내 어깨를 다시 움츠리고 버스를 기다립니다.


이제 막 버스가 저 아래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지점의 반대편을 지나 언덕 위까지 갔다가 골목을 돌아서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빨라도 족히 3분의 시간은 더 소요됩니다. 분명 3분이 긴 시간이 아닌데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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