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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9. 2024

그렇게 흘러

0778

다시 유유히 흐릅니다.


강은 옆으로 비켜가고 바다는 앞뒤로 오고 갑니다.


강의 무심함도 바다의 반복도 마음에 관여합니다.


성질이 물이어서 더 그런 듯합니다.


상자처럼 거대한 물은 바위 같다가도 연기입니다.


단단한 포근함과 부드러운 경직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강의 뒤켠에는 산이 어울리고 바다의 등 뒤에는 하늘이 적절한 배치가 됩니다.


찻잔에 비치는 강과 바다의 어른거림은 결이 다릅니다.


차의 맛은 차의 표면에 드리워진 이미지가 팔 할입니다.


한 모금

한 모금


입술이 닿을 때마다 윤슬이 입가에 묻고 파도가 코끝에 묻습니다.


격렬하게 차갑고 고요하게 뜨거운 순간이 지나갑니다.


이때에 마음속 가장 정제된 언어만 길어내 찻잔 받침 위에 늘어놓아야 합니다.


아무 이야기나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특히 여기에 없는 이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입이 간지러우면 차라리 집에 늘어져 있는 화초들의 흉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화초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면 그대의 모든 이들도 잘못이 없습니다.


조용하게 바라보는 강과 바다는 괄호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무한하게 머물러도 

무한하게 반복돼도


허송세월이 아니어서 신기한 일이 됩니다.


세상 일은 그렇게 분주해도 내 세월이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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