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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30. 2024

심드렁 증세

0779

글쓰기의 제일 두려운 적은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마음에 접착되지 못하는 상태
어떠한 것도 마음에 관여되지 못하는 상태


무관심해지니 글을 쓰기 위한 마음의 손발이 묶인다.


알고 있던 것은 호기심이 일지 않아서 시큰둥하고 모르던 것은 굳이 알 바 아니어서 고개를 돌린다.


심드렁해지니 그 무수했던 글의 재료들이 비 온 뒤 지렁이들처럼 내 몸 구석구석으로 자취를 감춘다.


심드렁한 상태로 가지 않으려면 글을 쓰는 속도보다 몸을 빠르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핀셋으로 콩을 옮기는 템포로 시간을 다루어야 적어도 백지 앞에서 심드렁해지지 않는 듯하다.



심드렁의 치명적인 결함은 정체停滯 있다.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상태
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상태


사색이 결여된 머무르기는 심드렁의 가장 큰 약점이자 나쁜 특징이다.


심드렁이라는 증세는 방향을 가진 추진체가 고장 났다는 신호다.


몸은 움직여도 그 활동의 질이 빈곤해진 탓이다.


그때 자주 하는 실수는 이러하다.


무미건조한 군중의 소음공간으로 나를 밀어놓거나 맹목적인 타자의 시선에 나를 방치하기를 즐긴다.


글을 쓰려면 어서 심드렁으로부터 나를 구해야 한다. (절대로 심드렁 증세가 나타날 때 카페인이나 알코올을 주입하면 안 된다)


차라리 심심하거나
차라리 고독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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