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02.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VIII

벽과 창 

한순간도 조용한 적이 없었답니다

창을 비집고 들어온 빛이 벽에 들러붙어 있습니다.

창은 관대했으나 한치도 무너지지 않았고

벽은 완고했으나 온전히 수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위에 모든 이웃한 사물들은 서로에게 부족함을 탓하지 않습니다.

아쉬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 벅찬 기운으로 오롯이 잘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벽이 탁 트인 창을 닮으려 허무는 순간 더 이상 벽이 아닙니다.

창이 견고한 벽을 닮으려 메우는 순간 더 이상 창이 아닙니다.

이토록 벽을 벽이게 하고 창을 창이게 하는 것이 결코 당연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벽과 창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입니다.

신이 만들었다면 벽과 창의 사이에 호흡을 불어넣어 관계를 부여했을 겁니다.

인간은 각각의 사물에 기능을 부여해 모양 만들기에도 급급했습니다. 

벽과 창이 서로 아귀다툼을 하든 등을 돌리고 평생 대화를 나누지 않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손을 떠난 벽과 창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서로의 장점을 묵묵히 지켜보며 헤아립니다.

상대의 장점을 배우는 것이 나의 단점을 지우는 일이라고 여기듯 말입니다.

나는 지금 벽과 창 사이에 앉아 있습니다.

벽이 창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낍니다.

창이 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낍니다.

그것은 경계가 아닌 배려의 시선입니다.

무엇을 섣불리 거드는 배려가 아닌 그저 지켜만 보는 배려인 듯합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창이 받아서 벽에게 던져준 한 줌의 빛이 내 이마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창 모양을 그대로 본뜬 빛의 명암은 벽에 그만한 액자를 만들고 내 그림자를 담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액자는 벽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이동합니다.

벽과 창이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갤러리입니다.

모양은 회화적지만 분위기는 음악적입니다.

나의 이목구비는 검은 그림자에 묻히지만 표정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벽을 펼치고 창을 접지 않으려 합니다. 

벽과 창이 하는 날마다의 그림 그리기와 그림자놀이를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물들 간의 관계는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전부입니다.

결과는 언어가 빠져있어서 없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분명 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그들의 놀이에 끼어들어본 당신이라면 압니다.

얼마나 요란한 아름다움과 고요한 폭동이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